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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51호]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은 시스템에서 온 것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7 17:40
조회
468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지난 1월 9일 두산중공업의 배달호씨가 두산그룹의 노동조합 탄압과 가압류 조치에 항의해 분신, 사망한 이래 3명의 노동자들이 같은 이유로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노동계는 그간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사용자측의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로 인하여 현재와 같은 극한적인 상황이 초래되었다고 보고, 그 개선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경영계는 이러한 노동계의 움직임은 사용자측의 합법적인 권리 행사를 문제삼는 것이고, 개인의 사망과 제도적인 측면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와 같은 경영계의 항변은 틀린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문제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비껴난 것이다. 노동계에서도 현재 사용자측이 행한 손해배상청구가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의 행사의 일환이고, 조합원에 대한 가압류 결정 역시 법원의 재판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다투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사형제도의 합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듯이, 이 문제도 그와 유사한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이후 기업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물리적인 탄압이 한계에 부딪치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사법제도를 이용하여 새로운 대응방식을 개발하였다.


새로운 대응방식은 단체교섭에서의 엄격한 대응을 통한 노조 파업의 유도, 노조 간부들에 대한 고소고발, 대규모의 해고 및 징계조치, 민사상 가압류의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사업장에는 노사간 교섭을 통한 합의는 사라지고, “적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우리가 죽는다”는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어떤 노동조합이 사용자로부터 강성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그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자신의 인신 뿐만 아니라 재산권까지 모두 박탈당할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선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일련의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사용자측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는 재판을 통하여 그 손해를 보전하고자 하는 목적을 벗어나 있다.


그 중 많은 경우는 노동조합의 재정적 취약성을 이용하여 사용자가 단체교섭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목적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체교섭에서 또 다른 교섭사항이 되고, 사용자는 그 취하 여부를 이유로 노조에게 또 다른 양보를 요구하고, 다음해의 단체교섭이나 임금교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아가 조합원 개인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활용하여 사용자측은 조합원들에 대하여 암묵적으로 노조의 탈퇴를 종용하고, 반성문이나 서약서의 제출에 따른 선별적인 가압류 해제를 통하여 조합원들의 조합활동에 대한 참여도를 약화시키고 있다.


노동계가 사용자측의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를 문제삼는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용자측의 대응은 검찰과 법원이라는 기업에 우호적인 사법기구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경영계가 자신들의 대응방식이 합법적이라고 얘기하는 것 역시 기업에 우호적인 검찰과 법원의 존재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뿐만 아니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같은 진보적인 법률가단체들은 현재 검찰과 법원의 시각이나 제도 운영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하고 있다. 그간 검찰은 공안적인 시각에서 노동조합을 대해 왔고, 파업의 정당성을 가장 협소하게 적용함으로써 노동조합의 간부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여 왔다.


노동문제에 국한하여 본다면, 검찰은 객관적인 법집행기구로서의 지위를 포기했다고까지 얘기되고 있다. 그리고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노사 자체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까지 개입함으로써 개별 사업장의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해 왔었다. 법원 역시 검찰의 과도한 법집행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대규모 사업장에서 파업이 발생하는 경우 노조 간부에 대한 구속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고, 개별 사업장에서의 파업을 이유로 상급단체 간부들까지 구속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사법제도를 활용하여 노동조합에 대응해 왔다. 나아가, 법원은 형식적인 심사만을 거친 채 노동조합의 간부들에 대한 가압류 결정을 내림으로써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탄압의 수단을 제공하였다. 이로써 사용자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노동자들의 재산권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구속이 되고 해고의 협박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의 기반마저 빼앗길 위험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늦게나마 법원이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가압류 심사를 엄격하게 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국 경영계가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 결정이 합법적이라고 하며 노동계측의 주장에 대하여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와 같은 제도적인 문제점을 도외시한 것이고 노동자의 죽음들이 상징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해결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의 남용이 문제된 경우 그 제도의 개선을 검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계속적인 죽음은 현재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해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현재 시급한 과제는 노, 사, 정 모두 그 제도의 운영자로서 각자의 책임을 통감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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