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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61호] 국가인권위원회 왜 이러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0:23
조회
387

인권연대 편집부


 김기용씨(63세, 전 SK 건설 부사장)는 지난 봄 의사로부터 뇌졸중 초기 판정을 받은 후 병원을 오가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인으로 평탄한 삶을 살던 김기용씨의 인생은 지난 1999년 9월 16일 집에서 인천지검 수사관들에 의해 강제 연행되면서 달라지게 된다. 김씨는 체포영장도 없이 집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에 의해 연행된 뒤, 당시 인천시 남동구청장에게 뇌물을 제공했음을 시인하라는 추궁을 받으며 검찰청사에서 고문을 받았다.


 김씨의 주장에 의하면 벽을 보고 차렷 자세로 똑바로 서있게 하는 면벽 반성, 쪼그려 앉기, 잠 안 재우기,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 목을 비롯한 급소 부분을 가격하거나 움켜쥐기, 화장실 보내주지 않기와 욕설 등의 고문이 이어졌고, 고문에 굴복한 김씨는 사실과 다르게 뇌물을 주었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뇌물을 준 것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몇 명 죽였다는 것도 얼마든지 자백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문과 가혹행위는 김씨가 연행된 9월 16일 23:50부터 귀가 조치된 9월 19일 22:00까지 70시간 동안 영장도 없이 강제 구금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검찰에서 불법감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한 기업인


 김씨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였지만, 법원은 “피고인이 17일 00:40경 검찰청에 도착하여 19일 22:00경 검찰청사에서 나올 때까지 귀가하지 못하였고 잠을 자지 못한 채로 조사를 받거나 검찰청사에서 대기하였던 점은 인정된다” 면서도,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기록상 그 증거능력을 부인할만한 사정을 찾을 수 없다”며 상반된 판단을 내리고, 피고인들이 처음에는 범행을 시인하다가 “자백을 전면 번복하여 이를 부인하는 등, 피고인들의 사회적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을 하였다”면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김씨의 유죄를 확정하였다.


 김씨는 실형 선고를 받지는 않았지만, 70여 시간의 불법감금상태에서 인간 이하의 모멸감과 절망감을 안게 되었고,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와 좌절을 경험했다며 인권연대에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인권연대는 대기업의 임원마저도 검찰의 가혹행위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일반 서민들은 오죽하겠나”하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권연대는 이미 대법원까지 형이 확정된 상황이어서 ‘재심’의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새로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통해 이 사건 당사자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억울함을 풀어보자


 김씨는 2002년 7월 “불법체포,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등 고문과 증거인멸 등을 자행한 수사검사 정석우를 처벌해 달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하다며 진정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의 거듭된 항의를 받고서야 6개월만에 조사를 진행하였다. 인권위는 진정을 낸지 20개월만인 2004년 2월 23일 전원위원회 결정에 의거 “검사 정석우를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 혐의로 검찰총장에게 수사 의뢰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인권위는 이 결정을 통해 “영장이나 체포없이 70시간 가까이 조사를 진행한 것은 진정인(김기용씨)의 임의에 의한 조사였다고 보기 어려워 불법감금에 해당한다 하겠고, 그 조사과정에서 이루어진 가혹행위는 헌법 제 12조 제 1항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설립 이래 최초로 현직검사에 대해 ‘수사의뢰’를 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직 검사를 수사의뢰하고


 인권위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은 몇 차례 형식적인 조사 끝에 불법감금과 가혹행위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종결’ 처리를 지난 5월 28일 인권위에 통보했다. 이에 인권위는 검찰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 6월 다시 수사의뢰를 하였다. 두 번째 수사의뢰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처음부터 인권위가 가해자인 검사를 ‘고발’하지 않고, 그것보다 한 단계 수위를 낮춰서 ‘수사의뢰’를 한 것도 문제지만,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차원에서 내사 종결한 것에 대해 ‘고발’을 하지 않고 ‘수사의뢰’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고발’을 통해 정식 사건으로 접수가 되어야 검찰로서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검찰이 고발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할 경우, 이에 대한 재정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처럼 검찰은 인권위의 두 번째 수사의뢰에 대해 다시 ‘혐의 없음’을 통보하였다.(8월 30일) 검찰은 재수사를 진행하였음에도 정검사에게 범죄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여 ‘무혐의’로 진정을 종결처분 하였지만, 피진정인(정검사)에 대해서는 별도로 자체 인권교육을 실시하였다고 인권위에 답변하였다. 수사를 해보니 죄가 없는데, 왜 인권교육을 진행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있지만 그냥 자체 교육을 진행하는 정도에서 멈추겠으니 그런 줄 알라는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의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검찰의 답변인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인권위와 검찰 두 기관이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이 공을 주고받는 사이, 김씨의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따져볼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게 되었고, 마침내 19일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9월 6일 인권위는 다시 전원위원회를 열어 김씨 사건에 대해 논의했지만, 피해자가 요구하는 재정신청은 진행할 수 없다는 간단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내사종결 처분의 경우에는 재정신청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인권위가 인권연대에 보낸 공문)는 것도 있었고, “재정신청을 제기하려면 최초 수사종결시에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지나서 법적으로 불가능하다”(한 인권위원의 전언)는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상이 안된다는 것과 시효가 지났다는 것은 “안된다”는 것만 같을 뿐, 너무도 다른 이야기이다. 인권위에게 중요한 것은 그냥 “안된다”는 사실 뿐인가.


인권위가 책임 있는 국가기관이기에 이 기관의 ‘수사의뢰’는 내사의 전제가 되는 일반적인 ‘진정’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곧 ‘고발’로 볼 수 있다는 등의 법조계의 유권해석도 인권위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정신청을 낸 다음 법원의 판단으로 기각되면 그만이지만, 인권위가 이런저런 서로 다른 법리를 내세우면서 제기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검찰의 핑퐁 게임


 김씨가 2002년 7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이후, 그가 얻은 것이라곤 인권위의 조사 결과, 불법감금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인권위의 무성의와 보수적인 법해석, 인권위와 검찰간의 법리 논쟁과 핑퐁식의 책임전가로 인해 가해자인 검사를 처벌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결정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만 허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인권 구제를 위한 진정으로 오히려 인권침해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권위가 법적 권한에 상당한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김씨 사건이 이렇게 비틀어진 것은 법적 권한의 유무가 아니라, 인권위가 검찰의 고문을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나 가급적 인권피해자의 입장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진정인들은 공소시효가 완성된 지금 지난 2년 2개월 동안 괜한 허송세월만 했다며, 인권위에 진정하는 방법을 일러준 인권단체를 원망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문 근절의 의지가 있는가?


 조직을 위해, 또한 조직원을 위해 뻔한 사건을 덮어버리는 검찰은 그렇다 쳐도, 도대체 인권위는 왜 이러는가? 인권위는 왜 존재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관료주의적이며 구태의연하고도 보수적인 법해석에 매달리지 않고,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인권피해자들을 돕고, 인권침해의 재발방지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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