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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61호] 왜 과거청산인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0:22
조회
360

김희수/ 변호사, 인권연대 운영위원


 과거사청산, 과거청산, 과거정리 등의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거청산이 적절한 용어인 것으로 판단한다. 과거사는 옳건 그르건 혹은 굴절되었건 그냥 과거사로 남을 뿐인 것이어서 청산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고, 과거정리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을 바탕으로 한다는 전제가 있을 수 있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경제가 힘들다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과거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여전히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옥사 사건 중 사상전향 강제공작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5명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상전향 공작이라는 것이 1925년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할 목적으로 치안유지법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들을 전부 형틀에 가두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도입한 제도였다. 당시 독립을 열망하던 우리 민족에게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 서약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민족혼을 말살시킨 식민지의 유산이 해방 이후에도 버젓이 살아 수많은 민주인사들에게 사상전향서 작성을 강요하였고, 나중에는 준법서약서로 바뀌어 존속하다가 결국 70여년 만에 폐지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토록 과거청산의 뿌리는 깊고 굳건한 문제다.


 똑같은 논리로, 여전히 국민을 바보로 알고 안보의 허울을 쓴 국가보안법에 대한 존속론이 힘을 얻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국민을 못 믿고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아직도 원혼은 구천을 떠돌아


 이것만이 아니다. 아직도 군부 독재에 의해, 군대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혼들이 하늘을 떠돌고 있고, 유가족들은 잠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전후 수많았던 민간인 학살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들은 이미 탈진해 진실은 밝히지도 못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단지 지나간 일이라고 방치 할 수 있는가. 이런 한을 풀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미래를 논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도대체 과거청산을 반대하는 자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또한 과거청산의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는가.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편에 섰던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당연히 될 수 없다. 이는 억눌리고 학대받은 민중과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상식과 경륜을 갖춘 인사이어야 한다. 야당 일부에서는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데, 그 논리는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편에 섰던 자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일 뿐이다. 정말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또다시 역사를 왜곡 굴절시키고 그들의 자리와 기득권을 보전하겠다는,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겨 달라는 말일 뿐이다.


 그러면 과거청산의 대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100년 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중차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진실을 찾는 것은 오랜 세월의 흐름과 증거의 은폐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숙제의 대상은 당연히 국가 폭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잘못된 법령, 제도, 관행 등을 청산하는 계기와 합의점을 만들어야 한다.


화해는 진상규명과 책임이 전제되어야


 흔히들 화해와 미래를 얘기한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의 조건은 진실규명, 가해자들의 참회와 재발 방지가 전제된다. 사상전향 공작으로 70여명이 사망되었다고 추정되고 있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직접 확인한 것만도 5명이다. 그런데 누가 사죄를 하였는가. 법무부, 중앙정보부, 교정당국, 사상전향 공작반 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누구더러 무엇을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말인가. 그냥 피해자와 희생자 또는 유가족들이 알아서 화해하라는 말인가.


 또한 진실을 말하기 전에 먼저 화해를 거론하는 자들은 당연한 듯이 불처벌을 주장한다. 공소시효 법리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십계명이라도 되는 듯이 호들갑을 떤다. 공소시효는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제도일 뿐이다. 법의 이념 중의 하나인 법적안정성을 내세운 제도가 공소시효 문제일 뿐이고, 만일 정의가 법적 안정성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되면 공소시효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문명국들은 최소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자들의 처벌에 있어 공소시효의 예외를 인정해왔고, 국제인권규약에서도 행위 당시 명문의 처벌법규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처벌이 가능함을 전제하고 있다.


 결국 이런 공소시효 문제는 국가가 문명국가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 국민들의 인식 수준과 입법자의 의지, 정의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공소시효는 절대 고수되어야 할 금과옥조가 아니다. 가해자와 범죄자의 처벌을 전제로 할 때 온전한 용서와 화해와 사면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일이니 전부 묻어 두고 그냥 미래만을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자들은 과거의 야만스러운 범죄를 빗자루로 쓸어 망각 속에 넣어버리고자 하는 또 하나의 야만스러운 작태를 저지르려 하는 것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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