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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50호] 집단적으로 하면 악이 선이 되는가 - 이라크사람에게 물어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7 17:39
조회
476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민대 법학과 교수


대통령의 신임투표문제로 인해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소리가 온 나라에 가득하다. 얼마 전에 민주노동당이 홈페이지에 이라크전에 전투병을 파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국민투표를 부쳐야 한다고 하였는데 대통령이 다른 용도로 이 카드를 뽑아 들었다.
국민투표와 전쟁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하겠다. 민주노동당의 주장 이래로 대학가에서도 이라크 파병문제를 놓고 총학생회가 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전달하겠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역 대학생 8명이 파병문제는 국민투표에 회부해야 한다며, 군대에 입영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병역거부>를 선언하였다.
전쟁과 평화보다 심각한 문제가 인간사에는 없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는 절충은 원래 없다. 국익을 위하여 파병하자는 집단은 대충 다음 같은 주장을 한다. 이완된 근육에 탄력을 주어야 하듯 국군이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라는 것, 미국과 동맹을 돈독하게 하고 은혜도 갚고 신용등급을 올리자는 것, 석유자원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 등등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분명하게 뻔뻔해졌다는 점이다. 잇속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이라크 해방과 민주주의를 방패삼는 것보다 훨씬 도덕적이다. 바로 솔직함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이익과 연결시키는 뛰어난 상술에는 경탄해야 한다. 전쟁을 통한 이익이라는 것도 침략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따지고 보면 가진 자들의 이익이다. 자고이래로 없는 자들은 전쟁에 아들을 투자해 전사통지서를 얻었을 뿐이다. 전쟁을 국익과 연결시키는 뻔뻔함을 정상적인 도의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파병반대론자들이 파병찬성론자와 명분싸움을 하다가 국민투표라는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왔다. 국민투표는 파병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보자면 프랑스의 드골은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여 퇴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는 예는 희귀하기 때문에 국민투표는 자살골에 가깝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이 만장일치나 절대다수로 파병에 동의하면 파병하는 것이 정당화되는지이다. 나아가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가 결의하면 파병은 정당화되는지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만장일치의 의견 또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공민의 기본이라고 배워왔다. 사실 이 말이 맞다. 그러나 파병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가결되느냐 부결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상황을 “동의는 불법을 치유한다(volonti non fit injuria)"라는 유명한 법언(法諺)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웃의 물건을 훔쳤는데 그 이웃이 그 물건을 가져도 좋다고 한다면 훔친 자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동의는 피해자의 동의여야 한다. 따라서 이라크 국민이 정당한 권위(국민투표)에 기초하여 대한민국 군대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면 대한민국 군대를 보내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국내에서 거론되는 국민투표는 이웃집을 강탈하기에 앞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자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남의 나라 쳐들어가는 일은 처음부터 우리나라의 국민투표사항이 아니다. 사실 전쟁의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은 권력자들의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에 국민을 집단적으로 연루시켜 국민 모두를 전쟁범죄자로 만드는 해괴한 짓이고, 권력자의 범죄를 물타기하는 술책이 될 수도 있다. 악은 아무리 회칠을 해도 악이다. 우리는 그저 단호하게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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