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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국가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9-26 13:49
조회
374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촛불집회에 맞서서 태극기를 들고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등장했다. 일당 받고 관제 데모한다는 세간의 소문이나 보도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참석한 이들도 제법 있는 것 같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거나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도 20% 정도는 된다니 말이다.


  이른바 ‘태극기집회’가 가장 많이 내세우는 말이 ‘애국’이다. ‘박사모’도 대한민국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라며 박사모 회원 한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투신자살하자 애국시민들은 궐기하자며 등장한 선동적 구호 속에도 애국이 들어 있다. 특히 보수단체들 중심으로 애국 혹은 애국시민이라는 말이 툭 하면 튀어나온다. 나라를 사랑한다니,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꼭 한 가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더욱이 국가를 사랑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탄핵을 거부한다며 투신까지 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이유에서 또 다른 안타까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인 일인가. 국가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국가가 이루어지려면 국민, 영토, 주권이 있어야 한다. 특정 영토 내 주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을 때 이들을 종합해 국가라 한다. 이 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주권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다. 대한민국헌법 1조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어떻게 경험하며 살아온 것일까. 이 지당한 헌법은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헌법은 민초들이 참여해 만든 게 아니다. 헌법을 만든 주체는 당시의 권력이다.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는 했겠으되, 법은 당시의 정치권력이 만들었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지면서 사회는 체계화하고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회가 안정될수록 보이지 않게 정당화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법이고 동시에 법을 만든 권력이다. 권력자가 한결같이 질서와 안정을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 제기되는 또 하나의 질문, 이런 권력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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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구글


  국가의 성립사를 보면, 권력이 있기 전에 있었던 것이 폭력이다. 국가는 압도적 폭력이 다른 폭력을 이기고 그 폭력이 정당화되는 과정에서 성립되어 왔다. 그러면서 다른 폭력을 불법적인 것으로 배제하며 폭력을 독점해왔다. 대표적인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로 규정한 바 있다. 정치학계에 널리 알려진 국가 규정이다.


  한 마디로 국가 이전에 권력이 있었고, 권력 이전에 폭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폭력이 행사될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이들이 그 폭력에 대해 묵인, 동의, 복종하면서 폭력이 정당해지고, 그 때부터 폭력은 권력으로 작동한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권력이란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협박만으로도 그 대상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권력은 폭력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들이 폭력의 가능성을 내면화하고 그에 동의하면서 성립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근대 국가의 형성에는 힘에의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 약한 힘이 강한 힘에 동의 또는 동화되면서 강한 힘에 의해 국가라는 것이 형성되어 왔다. 그 강한 힘이 권력이 되면, 그에 동의한 사람들 간 공유의식을 객관화해줄 법과 제도를 확정한 뒤, 그 법과 제도 안에 머무는 이를 애국자라며 칭송해왔다. 법을 어기면 매국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그 논리가 적용될수록 법이 정당해지고, 법이 정당해질수록 권력도 강화되는, 순환적 포획의 그물을 펼쳐온 것이다. 애국하면 할수록 견고해지는 것은 사실상 권력인 것이다.


  물론 권력이 튼튼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 마치 ‘조폭’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들을 일정 조건 하에서 보호하듯이, 권력도 분명히 권력에 동의한 이들의 주권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민의 주권을 보호하지 못한 권력 때문에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권력이 튼튼해져야 백성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에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좀 더 근원적인 데 있다. 압도적인 힘에서 비롯된 권력은 속성상 언제나 하향적이다. 권력은 아래로부터의 상향적 요구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자신을 유지하고 남는 만큼만 아래를 돌아보고 보호하려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도 역설적이게도 그 잉여 권력의 작품이다. 이 권력을 은근히 국가와 동일시하면서 권력을 실제로 국민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제어해온 것이 권력이기도 하다. 애국이란 무엇인지. 국가를 사랑하는 것과 기존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같은 말인지 다시 질문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실체는 역시 사람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중요하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주권에 일방적인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물론 그조차 어느 정도 하향적 권력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결국 국민이 움직여야 할 도리 밖에 없다. 정치권력은 그렇게 하지 않기, 아니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국가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그 선언이 국민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되며 드러나는 동적인 과정에 가깝다. 애국의 진짜 대상은 기존의 권력이나 권력 집단이 아니라, 주권을 지닌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는 행위가 권력의 근간인 폭력을 정당화시키고 지속시키며, 주권을 그저 말뿐이게 만든다. 그것이 권력의 남용이다.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권력의 남용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실체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위로부터 주어진 권력을 그저 승인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아래로부터 존중하고 살리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국가는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과정이지, 기존의 강고한 권력 체계가 아니다. 사랑해야 할 것은 인간이지 권력 집단이나 정부 조직이 아니다.


  이제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인간 개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아래로부터 목소리 하나하나를 모아 진행되는 지금의 탄핵 정국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남용해온 권력의 이기적 속성과 관습을 타파하고, 주권을 비로소 확보할 수 있는 호기다. 사랑이라는 숭고한 행위의 대상은 정부 조직이 아니다. 친해져야 할 것은 권력 집단이 아니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이고, 참으로 인간다운 가치다. 권력을 사랑할 일이 아니고 사람을 사랑할 일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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