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권연대

home > 활동소식 > 월간 인권연대

[262호] 청년, 정치, 그 전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7-21 15:59
조회
293

박용석/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사무국장


 궁금하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밑천이 될 수 있을까?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지만, 가슴을 펴고 사는 전제조건이 단지 젊음일 수 있을까? 1985년생, 따지자면 얼마 전 당선된 제1야당의 당대표와 동갑이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청년 담론의 홍수라는 생각이다. 익지 않아 고개 숙일 필요 없는 것이 청년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면, 근래 청년이란 꼬리표로 한데 묶이는 것이 꺼려지고 부끄러울 지경이다.


 세대 담론이나, 그 세대 담론과의 상호작용으로 발명된 ‘청년 정치’라는 담론이나, 혹은 그에 대한 제각각의 주장과 해석 대부분은 괴상망측하다. 저따위 담론들 안에 얼추 나이가 같다는 것만으로 묶이지 않기를 바란다. “발톱 때 속 박테리아 계보도의 미적 감각을 토론한다”는 포스트 포스트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 같지도 않은, 같잖은 담론 실종의 시대라지만. 제발 적당히 할 일이다. “니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노래하던 누군가도, 이제는 고인이 된 이 시대에. 이제 우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을 ‘꼰대스럽다’ 이야기하는 우습지도 않은 시대를 창조해 버린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린다는 하이에나’마냥 여의도는 물론, 각종 관공서 언저리를 떠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안다. 그네들이 건네는 명함에는 최소 다섯 개의 직함을 적은 경력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곤 한다. 그렇게 나타나 적혀있기로만 화려한 경력 같지 않은 경력으로 경쟁자를 제치고 자리를 차지한다. 몇 개월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다른 곳에서 다시 출몰하고, 또다시 다른 곳에 출몰하길 반복한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청년팔이 소년’의 카르텔을 꾸려 정계를 포위하고 나선다. 역설적인 것은 게 중에 잘 풀려 높은 자리에 간 사람은 또 별로 없어 보이긴 한다.


 그래서 ‘청년팔이 소년’ 중에 현시점 가장 성공한 자가 이준석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텐데,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이준석보다 나은지를 도통 모르겠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싶다. 어차피 직업정치가 특정한 집단이나 세력의 이익과 목적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준석이야말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우습고, 그래서 무섭다.


 청년 할 때 청이 푸르다는 뜻 외에 조용하고 잠잠하다는 뜻도 있다는데. 근천스럽게 즉자적 욕구를 떠들어대는 그저 나이만 젊은것들의 악다구니 속에 조용히, 잠잠히 제 자리에서 세상을 개척하고 있는 청년들은 그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섭고 우습다. 착하고 예쁘고 말 잘 듣는 청년’임을 증명해내는 자만이 간택되어 청년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증명이. 청년 없는 청년 정치 전성시대가.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를 고민해 본다. 세태에 찌들어 그 색이 바래 구차하다는, 소위 ‘꼰대’보다 맑고 푸른 이들은 존재하는지를. 존재하긴 한다면 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아파야 하고, 절망해야 하고, 그러면서 희망도 가지고, 짱돌도 들고, 분노도 하라고 주문받는 이 시대의 청년들은 청년이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청년이 필요한 시공간에 실종된 청년을. 정도를 넘은 젊은이들의 홍수를.


 “그딴 게 청년이면 나는 청년 안 할란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쯤은 있는 꼰대라도 될 수 있게 내 자리나 잘 지키고 있어야겠다. 그마저도 어려워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언젠가 다음에 올 청년에게,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다.” 내 마음은 이런데, 이 시대, ‘착하고 예쁘고 말 잘 듣는 청년’이길 거부한 우리들. 그대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청년이기 전에 사람부터 되자고. 꼰대라도 되자고.


전체 2,17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159
[294호] 월간인권연대 2024년 3월호
hrights | 2024.03.19 | | 조회 68
hrights 2024.03.19 68
2158
[293호] 월간인권연대 2024년 2월호
hrights | 2024.02.19 | | 조회 59
hrights 2024.02.19 59
2157
[292호] 월간인권연대 2024년 1월호
hrights | 2024.01.20 | | 조회 42
hrights 2024.01.20 42
2156
[291호] 월간인권연대 2023년 12월호
hrights | 2023.12.20 | | 조회 149
hrights 2023.12.20 149
2155
[290호] 윤석열 검사정권의 만행,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hrights | 2023.12.05 | | 조회 107
hrights 2023.12.05 107
2154
[290호] 월간인권연대 2023년 11월호 지면 전체보기
hrights | 2023.11.20 | | 조회 79
hrights 2023.11.20 79
2153
[289호] 정치의 실종? 민주주의의 실종?
hrights | 2023.10.20 | | 조회 98
hrights 2023.10.20 98
2152
[289호] 월간인권연대 2023년 10월호 지면 전체보기
hrights | 2023.10.20 | | 조회 126
hrights 2023.10.20 126
2151
[288호] 월간인권연대 2023년 9월호 지면 전체보기
hrights | 2023.10.05 | | 조회 94
hrights 2023.10.05 94
2150
[288호] ‘오펜하이머’와 인권(박홍규)
hrights | 2023.09.27 | | 조회 140
hrights 2023.09.27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