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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불평등 학습장이 된 코로나1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2-23 13:49
조회
638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불평등’이라는 단어는 전혀 낯설지 않다. 뉴스를 검색할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한다. 빈곤과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조건임을 상기한다면 새삼스럽기도 하다. 오래전 피에르 프루동은 자본주의를 “소득의 원천인 자본이 실제로 자기 노동력을 통해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속하지 않는 경제사회적 체계”로 정의했다.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연결이 끊어져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가능했던 역사를 돌아볼 때,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상상은 금기시하면서 불평등을 ‘문제’로 공론화하는 이 야단법석의 정체가 외려 궁금하다.


 이 야단법석에 대해 주변의 불평등 연구자들에게 물어보면 사태의 엄중함을 논한다. 2019년 김윤태 교수가 국회에서 발표한 자료(“왜 불평등이 문제인가?—불평등의 현황과 원인”)를 보면, 한국 상위층의 소득과 자산 집중도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1979 - 2011년 사이 상위 0.1% 가구의 실질 연간소득은 1억 3,100만원에서 7억 9,500만원으로 6배 증가했지만, 하위 90% 가구는 500만원에서 1,100만원으로 2.2배 증가하는 수준에 그쳤다. 2015년 크레디트스위스 발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순자산을 10분위로 구분했을 때 최상 10분위의 자산 점유율은 56.7%에 이른다. 상위 10%의 자산이 나머지 90%의 전체 자산보다 더 많은 셈이다.


 주목할 것은, 90년대 말 IMF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제도적 민주주의가 동시에 똬리를 틀면서 불평등 상황만큼이나 불평등에 대한 개입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사회의 ‘해체’, ‘위기’, ‘종언’에 대한 우려만큼이나,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 ‘사회혁신’ 등 다양한 이름의 프로젝트가 쏟아지고 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사회적 돌봄을 외주화하려는 정부, 윤리적 자본주의 흐름에 편승한 기업, 사회공헌이 평가지표에 포함된 대학, 민관협치 흐름 속에 몸집을 키운 시민단체가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불평등에 대한 개입은 제법 규모 있는 산업으로 진화했다. 비참한 생명의 신체. 언어, 감정을 적극적으로 자본화하는 산업.


 한편에서 제도적 민주주의의 흐름을 거치는 동안 정체성 정치의 외연은 넓어졌고, 대한민국은 어느새 ‘권리’를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사회권, 도시권, 주거권, 수급권, 복지권, 휴식권, 장애인 이동권, 성적 자기결정권, 청소년 참정권, 학습권, 환경권, 동물권, 낙태권 등. 하나하나 소중한 투쟁의 산물이다.


 그렇게 권리의 개수는 계속 늘어나고 법과 제도도 촘촘해지는데 사회적 고통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피에르 로장발롱이 말한, “정치가 너무 많기도, 동시에 없기도 한 기이한 역설”이라 해야 할까. n개의 권리가 성좌를 이룬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는 연인원 1,000만 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국일고시원 참사에서 “라면 형제” 화재까지, 가난은 여전히 주검으로만 대중 앞에 등장한다. ‘불평등’은 만인의 언어가 되었지만,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이라는 ‘자본주의 리얼리즘’(마크 피셔)이 대중의 감각을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되었다지만 종식은 요원하다. 대면 접촉이 어려워진 상황이 되자 미디어를 중심으로 ‘불평등 교실’이 확대 중이다. “코로나 묵시록”, “코로나는 ‘불평등’을 더 때렸다”, “누군가에겐 더 가혹한 ‘코로나19 재난’”, “코로나 디바이디드”, “코로나19로부터 여성을 지켜라” 등등, ‘코로나 불평등’ 관련 기사나 칼럼이 꽤 자주, 비장한 논조로 쏟아진다.


 불평등의 범주도 소득과 자산에 국한되지 않고 젠더, 의료, 장애, 정보, 교육 등 다차원에서 조명되고 있다. 요양 시설의 돌봄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택배 노동자, 배달플랫폼 노동자 등,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고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저 자신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코로나 불평등’을 경고음으로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2020년 11월 4일 조선일보의 기사 한 대목을 보자.


 “학교는 문을 닫지만 대치동 학원가는 여전히 불야성이다. 원만한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어 온라인 접속이 가능한 공공시설과 카페가 문을 닫으면 막막해진다. 비대면 수업은 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학생들이 얼마나 이해했는지 꼼꼼히 따지기 쉽지 않다.”


 ‘코로나 불평등’ 담론의 폭증을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다. 매일 벌어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권연대 회원들이라면 충분히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불평등 공론장처럼, 이 불평등 교실이 사람들의 ‘관심의 원’(마사 누스바움)을 넓히기보다 담론의 증식에만 기여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사진 출처 - freepik


 연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기존의 학습자 외에 새로 교실을 찾는 학습자는 얼마나 될까? 이 교실이 자기 학습을 독려하고, 윤리적 공감을 보태는 것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너만 피해자냐, 나도 피해자다”라는 아우성을 접할 때 이 우려가 증폭된다. 의사 파업에서 건물주 시위까지, 불평등을 좁은 의미의 공정성이나 제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로 전유하는 흐름이 코로나 사태를 관통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나’라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n개의 불평등 교실이 난립하는 건 아닐까? 만인이 자기-힘듦을 호소한다면, 코로나 시기 타자의 고통을 환기하는 작업이 미디어 ‘불평등 교실’의 단골 소재로 전락하지 않고 공명(共鳴)의 네트워크를 촉발할 여지가 있을까?


 확실히 21세기 대한민국은, 물질화된 불평등과 정동화된 불평등이 동시에 똬리를 틀면서 주검에 가까운 생명부터 제 삶의 비극성에 천착하는 대중까지 서로 다른 빈자들을 출현시켰다. 다양한 층위의 결핍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파편화된 호소에서 멈추기를 거부하고, 삶의 유한성과 의존성에 대한 공통 인식과 감각을 토대로 ‘우리 빈민’의 공통 성원권을 요구하는 게 가능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기도 하지만, 앎의 의지가 세상을 바꿀 의지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라는 불평등 학습장이 ‘정치적 올바름’의 감수성을 ‘인증’하는 데서 벗어나 취약한 생명을 돌볼 지혜를 궁구하고 공동 행동을 촉발하는 공론장이 되려면, 그간의 익숙한 관행을 버리고 우리 시대에 긴요한 연대를 새롭게 논의할 자리가 필요해 보인다. 소셜 미디어를 거치면서 더 견고하게 ‘부족화’ 되어가는 연대,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금긋는 연대는 우리의 실존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인권연대처럼 불평등 ‘산업’과 공모하지 않으면서 외롭고 험한 행보를 택해 온 풀뿌리 단체들의 역할이 전례 없이 소중하다. 이 논의가 공회전만 하다 보면, 불평등에 대한 개인이나 국가의 대응은 취약한 타인을 제 삶의 위협으로, 사회 안정의 위협으로 바라보면서 ‘치안’을 휘두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일본에서 올해 세 명의 홈리스가 폭행으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참상이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부터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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