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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나는 두통을 소유한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12 13:48
조회
6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이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 사는 길은 없다. 문제는 뭐든 다 소유하려는 데 있다. 쌀, 돈, 집, 땅을 소유할뿐더러, 가치, 신념, 권위, 심지어 자신의 행위마저도 소유한다. 가치 있게 살기보다는 가치를 소유하고, 권위로 존재하기보다는 권위를 소유한다. 많이 소유하고 크게 소유할수록 이익도 큰 시대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인간의 언어 관습조차 소유 양식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프롬의 정리에 따르면,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명사의 사용은 늘고 동사의 사용은 줄었다고 한다. 인간의 직접 경험을 반영하는 동사는 단순해지고, 소유의 대상이 되는 명사는 세분화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가령 구미인들은 흔히 “머리가 아프다”가 아니라 “두통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아픔은 체험되는 것이지 소유되는 것이 아닌데도, 아픔을 사물화시켜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언어를 구사한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자기도 모르게 나를 아픔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나와 아픔이 별개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안다”가 아니라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표현은 지식의 소유를 인간의 척도로 삼는 소유적 실존양식의 증거들이다. 인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업적이나 결과로 인간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간이 지식이라는 소유물을 활용해 더 많은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 인간의 삶은 그 지식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는 대로 살기보다는 그저 알 뿐이다. 깊이 알기 보다는 많이 알 뿐이다. 너도나도 그 길에 나서다보니 지식이라는 추상적 명사들만이 재생산되고 대단한 성과인 냥 체계화되어 떠다닌다. 세상에 지식은 넘쳐나지만 인간은 그 지식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 지식을 낳기 위해 명사적 지식의 생산에 ‘올인’하고 그 지식 체계로 사회는 작동하지만, 그렇게 작동되는 사회에서 인간은 도리어 소외되고 사물화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Morguefile


어디 그뿐이던가. 원래 신()은 인간이 내적으로 경험하는 지고한 가치의 상징이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신도 하나의 사물로, 즉 ‘우상’으로 만들어 나의 소유를 정당화시키고 확대시키는 수단으로 삼는다. 자신의 힘을 그 사물에 투영함으로써 자신을 약화시키고, 자신이 만든 그 사물에 굴종한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만든 우상의 소유물로 전락한다. 우상은 한낱 사물이기에 인간이 소유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우상의 소유를 위해 우상에 굴종하는 형태로 우상이 인간을 소유하는 것이다.(『소유냐 존재냐』, 1부 2장) 결혼으로 사랑도 소유하고 독점하면서 더 이상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사랑조차 내가 소유하는 그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자기중심적 평화주의”(ego-centric pacificism)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평화와 평화들』 1부 2장) 인간, 사회, 종교, 국가가 이른바 소유적 실존양식에 휘둘리다가 평화마저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였다. 평화를 자신에 유리하게 ‘소유’하고 자신을 위한 사물로 만드는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중국이 저마다 평화를 내세우며 아시아에서 갈등을 촉발시키고, 미국이 자유와 평화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희생시키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평화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다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사례들인 것이다.


세상은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주로 인간 내면에서 찾는 에리히 프롬 식의 진단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형 인간’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그의 연구는 여전히 통찰적이다. 인간다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근본 이유와 인간다워지기 위한 일차적 동력이 어때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인간적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인간으로 존재해야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선언은 당연하다. 그 소유를 제한하는 온갖 장애에 저항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 저항이 인간의 주체성을 살리고 인간다움의 기초를 다져주겠기 때문이다. 이론과는 달리 세상은 더 강력하게 비인간의 얼굴로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때이기에 더욱이나 소유형 인간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려 애쓸 도리 밖에 없는 것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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