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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남북 경제협력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12 13:48
조회
345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북한의 핵 보유 선언, 그리고 그에 이은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 위협과 그로 인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 고조라는 위기 국면이 지속되었던 지난날들을 뒤로 하고 바로 며칠 전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과거의 유사한 합의들과는 달리, 한 번의 쇼로 끝나지 않고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하나하나 약속이 이행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실제로 몇몇 일들은 벌써 시행이 되었다. 아직 원칙론적 수준이거나 예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분명 한반도 평화와 번영, 나아가 통일로의 길이 될 수도 있는 희망찬 첫 발걸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미국과 북한을 전향적으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인지는 명확하지 않기에, 이 모든 것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미국과 한국,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 그리고 심지어 북한 내부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자신의 이익과는 맞지 않는 집단들이 존재하기에 과도한 낭만은 분명 금물이다. 아마도 남북 간 협력 사업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하면 안보 등의 문제를 내세운 국내외 여론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오랜 기간 안보 문제에 특히 민감한 감각을 갖게 된 많은 국민들도 이러한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도 높다.


이번 회담에서 제안된 우선적 현안들 가운데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바로 남북한 철도 및 도로 연결에 대한 부분이다. 그 동안 러시아 등 북방경제와의 연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으나 북한 영토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가장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남북한 종단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연결 사업이 갑자기 현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철도 협력이 현실화되려면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떤 제안보다도 남북 뿐 아니라 러시아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 경제협력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매우 고무적인 합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freepik


남북철도 연결 뿐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북한 지역 개발 협력, 기업 진출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동안 북방경제협력이라는 이름 하에서 정부 차원에서뿐 아니라 기업 단위에서도 이미 수많은 공/사기업들이 러시아를 비롯한 옛 유라시아 지역들로의 진출 전략을 수립해 왔다. 이제 남북 간 경제 교류 협력이 현실화될 경우 지금까지의 이러한 전략들은 한층 더 확대되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다소 소극적이었던 러시아 역시 급작스러운 남북 간 화해협력의 분위기 속에서 남북러 삼각협력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우리에게 분명 긍정적 전망을 낳게 하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상황으로 인해 반격을 크게 맞을 수도 있는 과도한 낙관론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그 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 특히 기업들의 변화 없는 북한 및 북방 지역으로의 진출이 바로 그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남아 등지에 지상사를 파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장시간 노동 시간과 가혹한 노동 과정 통제, 노동자 조직 파괴 등으로 악명이 높다. 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을 포함한 한국 교민들은 현지인들과 현지 문화에 대한 비하와 멸시로 늘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업인들과 관광객, 그리고 교민들 모두 다양한 형태로 현지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것 등 국제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수년 전의 자료이긴 하지만, 기업인권네트워크의 보고서 등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이랜드와 한세실업의 미얀마 자회사인 코스텍 인터내셔널과 같은 한국기업이 임금 체불, 저임금, 강제적인 초과근무(보수 미지급), 사회보장급여 미지급, 열악한 노동환경, 유급휴가를 지불하지 않는 크고 작은 노동권 침해와 부당해고가 만연해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는 ‘가원’의 사례에서처럼 임금체불과 노조 가입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해고 등이 자행되어 왔다. 베트남에서도 일반적으로 한국 기업에서의 노동 강도와 시간은 높은 데에 비해서 임금은 현저히 낮고, 고용 계약을 준수하지 않고 사회보장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필리핀의 자유무역지대에는 3,0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데, 이곳에서도 부당해고와 같은 노동권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포스코와 삼성, 대우 그리고 그 자회사들과 한국 소유 인도네시아 대기업인 코린도 그룹은 팜 오일 농장을 만들기 위해 주요 삼림지를 베어 왔으며, 현지인들의 권리와 생계수단을 침해하고, 때로는 열대 우림을 없애기 위해 벌목한 나무를 태우는 인도네시아 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기도 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조폐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이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아동에 대한 강제노동으로 생산되는 목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인도에서도 포스코는 오딧샤 지역에 제철소를 짓고 철광석을 채취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등 인권 침해를 방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스웨덴에 본부를 둔 국제환경보건단체 IPEN과 베트남 시민단체 CGFED가 조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모두 과도한 초과근무로 인한 극도의 피로를 호소했고, 작업 중에 기절하거나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으며 근시, 다리 부종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임신한 경우에도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유산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하였다. 또한, 이들은 제품 제조과정에서 사용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 및 대처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은 바가 없으며, 이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렇듯, 한국 기업들의 적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임에도 적극적인 은폐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기업들 수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사실상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한국 성매매 업소의 문제이다. 위에서 언급한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 등지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한국식 성매매 업소가 현지의 부패한 관료, 경찰, 그리고 범죄조직들과 한 패를 이루어 국제범죄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이들 업소의 주요 고객들은 현지 교민, 관광객 등도 있지만, 핵심적 집단은 바로 기업 지상사 직원들과 출장자들이다. 이들 업소는 이들 국가의 가난한 여성들을 유인하여 한국 남성들의 성적 착취 대상으로 삼는 등 국제적 인권 문제의 주범으로 대두한지 오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접대라는 명분으로 공공연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업 활동의 한 부분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러시아 등지에서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소련 붕괴 직후부터 이미 동남아 등지에서와 유사한 방식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 공화국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도 부패한 권력과 범죄 집단에 뇌물을 바쳐가며 가난한 이들 국가의 여성들을 끌어들여 불법 성매매업소를 대대적으로 확산시켰다. 이후 유사한 구조는 러시아 등지로도 확산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업소의 소위 고객은 바로 한국 기업 지상사와 공관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김영란법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공관원 등의 출입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기업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접대라는 이름으로 현지 여성들에 대한 성착취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의 한국 기업들, 나아가 한국 사회의 끔찍한 노동 인권, 여성 인권, 환경 의식 그리고 사회복지의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추진되는 남북 경제협력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한국 기업이 가는 곳이면 반드시 북한 여성들의 성매매 여성화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한 편으로는 끔찍한 차별과 혐오의 감정이 만연해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적극적으로 조선족 동포 여성들과 탈북 여성들을 성매매 산업으로 유인하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은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대규모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페미니즘 논쟁에 이어 미투와 위드유 운동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충격적인 수준의 성폭력과 성희롱, 성착취의 현장인 성산업에서의 문제는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다. 북방경제협력의 확대 논의 속에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 외에는 진보적인 것을 찾아 볼 수 없는 기존의 논의 구조는 이제 타파되어야 한다. 남북 간 경제 협력이 구체화되기 전 이러한 한국 기업들의 추악한 현실들에 대해 적나라한 폭로와 반성이 실현되어야 한다. 동북아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사회현실의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지속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철학이 말로만 하는 구호가 아니길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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