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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지방의원들에게 인권은 씹다 버리는 껌인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12 11:53
조회
9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2015년 대전시 의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조례 이름도 기존의 양성평등조례 대신에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라는 이름을 붙여 제정했다. 하지만 조례 제정 이후 보수 지역 기독교계가 성소수자 보호 규정과 조례 명칭을 문제 삼아 반발하자 대전시 의회는 시행 불과 두 달 만에 지역 인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만든 성평등 기본조례의 명칭을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바꾸고, 성소수자 보호·지원에 관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병철 대전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전학생인권조례 제정안은 2017년 1월에 열린 교육 상임위원회에서 유보되더니 3월에 열린 교육위원회에서도 재차 유보되어 결국은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대전시 의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했고 대표발의자인 박병철 의원이 위원장이며 교육위원회 다섯 명의 의원 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반수를 넘는 3명인 상황이라 의지만 있었으면 표결을 통해 충분히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다른 시도에 비교해 내용상으로 부족한 조례안이지만 척박한 지역 학생 인권 현실을 고려해 최초 발의부터 상임위 의결까지 일관되게 통과를 촉구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속한 당의 동료 의원들이 발의한 의안을 표결 한번 없이 자동 폐기해 버린 것이다.


충남인권조례는 2012년 당시 자유선진당 송덕빈 의원의 대표 발의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 등 충청남도 의원 전원 발의로 제정되었다. 조례 내용 자체가 빈약했지만, 충청권에서는 처음 제정되었고 여야 구분 없이 도의원들의 전원 발의로 인권조례가 제정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되었다.


2015년 인권조례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강화한 개정안이 도의회에서 통과될 때에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자유한국당 도의원들의 찬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충청남도 의회 자유한국당 의원과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올해 2월 충청남도 인권조례가 도민갈등을 일으키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자신들이 만든 조례에 대해 폐지를 가결했다. 충청남도가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에 재의 요구를 했지만, 충청남도 의회는 지난 4월 3일 본회의를 열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이루어진 재석의원 26명의 전원 찬성으로 폐지를 가결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지난 1월 대전시의회는 대전시 도시공원위원회에 시 간부공무원의 당연직 참여를 5명에서 2명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도시공원 및 녹지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하 도시공원 조례)'을 의원들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도시공원위원회에 시 간부공무원을 5명이나 참여시켜 사실상 시 의도대로 개발행정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이었다. 도시 안의 환경권은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공해 등으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인권 분야인데 무분별한 개발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가 도시공원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었다.


실제로 지역의 시민사회가 난개발과 환경피해에 대한 우려를 들어 반대하고 있는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의 경우 지난해 10월 시 도시공원위원회에서 참석한 17명 중 10명의 찬성표를 얻었지만, 찬성표 중 5명이 당연직 공무원 위원이었다. 대전시가 '도시공원 및 녹지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하 도시공원 조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의회에 재의 요구를 했지만 여야 구분 없이 시의원 만장일치로 가결된 안이었기에 별다른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역 시민사회는 낙관했다. 하지만 대전시의회는 지난 3일 해당 안건을 상정도 하지 않고 폐기해버리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7대 의회를 끝내버렸다.


충청남도 의회가 충청남도 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요구에 대해 출석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폐지를 가결한 날 대전시의회는 자신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한 안에 대한 재의 요구를 상정도 하지 않고 대전시 집행부의 뜻대로 폐기해 버린 것이다. 의회의 처리방식은 정반대이지만 도민과 시민의 인권을 짓밟은 막가파식 의정활동을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충청남도 의원과 대전시 의원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4년의 임기가 끝나고 대다수 지방의원이 재선을 준비하거나 구청장 혹은 시장, 도지사에 도전하려고 바쁜 요즘이다. SNS에서는 각 후보가 4년간의 임기 동안 이뤘던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며 시민들의 표심 잡기에 한창이다. 의원들 개개인이 잘한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대전과 충남의 인권 분야와 관련된 지난 4년간 의원들의 활동은 여야를 막론하고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실망을 넘어 자신들의 의원입법 활동을 스스로 부정하는 상식 이하의 것들이었다.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 인권의 보편성을 지킨다는 것은 당연함을 넘어 누군가에는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다급함과 중요성을 가진 것이다. 그냥 생각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서 만들었다가 누군가가 조금만 반발하면 없애고 마는 것이 인권일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 대전과 충청남도 의회에서 인권은 씹다가 뱉으면 그만인 껌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 지방의원들이 다시 재선하고 구청장, 시장까지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제 지역도 인권을 기준으로 좀 바뀔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인권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은 지역민들에게 심판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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