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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개헌? 가부장들의 잔치!, 애초에 여성은 없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12 11:52
조회
11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하나, 국가는 고용, 복지, 재정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제거한다.”
“하나, 국가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실시한다.”
“하나, 선출직과 임명직 등의 공직 진출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한다.”


지난 3월 19일 여성계는 26일 발표를 앞둔 개헌안에서 ‘성 평등’ 조항이 빠진 것에 대해 ‘명백한 퇴행’이라며 대통령 개헌안을 규탄하는 위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문에 성차별과 폭력제거의 내용을 추가하여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가 성 평등에 있음을 명시하였고, 실질적 평등실현을 위한 적극적 조치와 남녀동수의 조항을 추가 신설하도록 요구했다. 이번 개헌이 국민의 절반인 여성의 시민권이 실질적으로 발현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러한 요구와 주장은 결국 대통령의 개헌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청와대의 입장은 이러하다.


“(전략) 여성계의 강력한 요구 중 하나는, 공직 진출 시 여성/남성의 동등한 참여 보장을 개헌안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중략) 현 개헌안처럼 ‘국가는 성별•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려 노력한다.’라는 조항이 이를 포괄 (중략) 헌법은 간결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진성준 청와대 정무비서관. 3. 23)


라고 밝히면서 “여성계가 이 문제를 꼭 좀 이해해주실 것을 당부”하였다. 여성들은 2016년 중반부터 여성의 관점에서 헌법을 공부하는 모임을 시작으로 2017년 1월 ‘헌법개정여성연대’를 구성하여 성평등 조항 조문작업을 진행하여 <헌법과 젠더>를 발행하였다. 또한 국회, 정당, 시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토론회 및 집담회 개최와 언론기고활동, SNS활동 등을 2018년 2월까지 활발히 펼쳐왔다. 무엇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문 대통령의 주장을 믿으려했다. 그러나 3월4일 여성대회가 있는 그 날, 성평등 조항 삽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보’를 전달받은 여성들은 정해구 개헌특위 위원장을 비롯하여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입장을 전달하고, 세 번의 입법청원과 기자회견을 여는 등 바쁜 3월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개헌안은 포괄적 차별금지 조항에 성별 포함, 그리고 난데없는 여성노동보호조항이 추가된 것이 전부였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개헌안을 보면서 소위 ‘진보남성들의 연대의 허위’를 본다. 정해구 위원장을 비롯하여, 내로라하는 진보를 자처하는 남성들, 평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우려하고, 고민하고, 실현을 위한 방안을 주장하셨던 남성들이 포진해있는 개헌특위의 민낯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주장하듯이 간단하다. 1인 1표를 행사하게 하면 된다. 핵심은 ‘실질적’인 행사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시민권이 실질적으로 유리천장, 미투운동에 대한 ‘펜스 룰’ 같은 여성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관행과 문화, 제도에 의해 실현되고 있지 못할 때 우리는 그 구조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빈민, 농민, 노동자만이 민중이 아니다. 권력과정, 즉 정치결정과정에서 밀려난 집단은 민중이다. 여성은 정파가 아니다. 여성은 민중이라는 ‘계급’이다. 국민의 절반이지만 소수자이고, 국민의 절반이지만 권력과정에 접근권이 결여되고, 자주 살해되고,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전히 탄압받는 민중이다. 남성보다 더 많이 일하지만 평가는 60%밖에 못 받는 빈민이다. 국가가 전쟁에 필요한 군인과 경제에 필요한 노동자를 생산하지만, 그 생산은 평가절하 되어버리므로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는 노동계급이다. 여성들의 ‘그 생산’은 다만 군인과 노동자의 수의 감소, 즉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만 ‘장려’받는 국가존속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대접받는, 특별한 착취를 받는 계급으로서 민중이다. 여성이 정파라고, 여성주의가 여성우월주의라고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여성으로서 일주일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은 민중도, 착취 받고 소외받는 계급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여성으로 한 달만 살아보라 말해주고 싶다.



'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여성행동'의 범여성계 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19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개헌이 ‘국민주권’을 실현하려는 뜻을 담고 있었다면 무엇보다 국민의 절반인 여성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국민’이라는 말도 마땅치 않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 즉 국가가 호명하는 존재로서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민주권’ 혹은 ‘시민권력’이 더 적확하다. 이러한 점에서도 현 정부를 비롯하여 개헌특위에 포함된 ‘진보남성들’의 불완전한 민주의식 혹은 의지를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여성운동계는 왜 개헌 관련한 전선을 광범위하고 강고하게 구축하지 못했을까?’하는 의구심이다. 약 2년 여간 연구와 발간, 토론회, 언론홍보 등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 기간 동안 여성들은 강남역, 여성혐오대응운동, 미투운동 등 다양하지만 일관된 ‘여성도 사람’이라는 ‘여성운동’을 강력히 펼쳐왔다. 그러나 여성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에도, 여성운동이 존재했음에도, 개헌이라는 과제를 향한 ‘블럭’으로 세력화되지는 못하였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조직되지 못하였는가? 왜 국가와 한판 피터지게 싸워야 할 시점에 이 모든 여성들의 운동이 분절되고, 분화되고, 심지어 적대하면서 분노의 조직화를 이루지 못하였을까? 무엇이 여성운동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가? 외부인가, 내부인가? 이 문제는 앞으로 여성운동이 치열하게 파고들어 해결점을 찾아야만 한다. 어쩌면 원인은 여성운동 내부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변하고 있는데 오히려 사회변화를 추동해야 할 운동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때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여성 국회의원들’ 뿐이다. 국회개헌특위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 역할, 여성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국회 내에서 강고한 ‘전선’을 형성하고, 그 힘으로 다시 여성들을 결집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대하고 또 기대해본다. 더 이상 여성계의‘이해’와 ‘양해’를 바라지 말라. 그리고 더 이상 그러한 이해와 양해의 자세로 타협하지 말라. 우리는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이해하고 양해했다. 그 결과가 더 많은 이해와 양해의 요구라면 더는 그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이해와 양해의 덫을 이번 여성 국회의원들이 끊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달려갈 준비는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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