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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20대 남성의 아우성을 들어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22 18:21
조회
414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김정은 대자보’라는 걸 찾아 읽었다.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패러디물인데, 남북대화를 비롯한 현 정부의 각종 정책을 조롱하고 비트는 내용이다. 북한식 어투와 서체를 이용한 형식은 참신하다 할 수 있으나 문학적 재능이 부족하고 사실 왜곡이 많아,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으로선 실패한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은 대자보’와 함께 쌍으로 나붙은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는 ‘전대협’ 명의 대자보는 더 한심한 수준이다.(전대협 앞에 ‘구국의 강철 대오’라는 수식어까지 80년대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과장과 억지로 가득찬 조악한 선동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이 조악한 대자보에서 한국 사회 20대 남성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이 교시했다는 <3대 전술 강령>의 세 번째 항목을 보자. “20대 남성들을 모조리 탄압하고 그들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라. (…)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을 시키고, (…)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빼앗아 공무원 시험의 낭인이 되게 만들라.” 가혹한 취업 경쟁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남성 역차별을 언급하는 대목도 있다. “그들을 성범죄자로 만들고, 사회적으로 거세하라. 언론, 뉴스, 미디어, 드라마, 예능, 문학, 교육 모든 수단을 통해 이들을 추악한 성욕의 괴물로 만들고 더욱 억압하고 옥죄어 세대 자체를 말살시켜라. (…) 기성세대가 여성의 편을 들게 하여 이들을 수평, 수직 구조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라.” 문재인 정부가 여성 편을 들며 20대 남성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들을 논리적으로 제압할 역사적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 낭인이 된 이유는 재벌 위주의 압축 성장 이후 부의 재분배에 실패하면서 일부 재벌과 국가직 말고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보기 어렵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부의 재분배 시도를 줄기차게 좌절시키고 재벌의 이익을 옹호한 자들은 ‘김정은 대자보’를 지지하며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바로 그 세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세력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과, 검찰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공수처 설립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나홀로 몽니와 땡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말할 수 있다. ‘전대협’, 당신들은 이용당하고 있다고. 



사진 출처 - 전대협 페이스북


 젠더 문제는 또 어떤가. 이들이 군복무 가산점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면 오히려 생산적인 논의를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다. 대자보가 언급한 것처럼 성범죄를 처벌한다고 해서 20대 남성이 “추악한 성욕의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가 여성 편을 든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년 이어온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정하려는 노력이 일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변화가 워낙 급격해서 성차 문제에 대해 50대 이상 기성세대와 20대가 느끼는 현실이 거의 정반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게 함정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조차 가지 못하고 결혼 이후에도 온갖 불평등과 불이익에 시달렸던 50대 이상 여성들과, 지금 20대 여성의 현실은 다르다. 가만히 있어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50대 이상 남성들과, 웬만해서는 여성을 따라잡기 어려운 20대 남성의 현실 또한 많이 다르다. 젠더 문제에 대한 20대와 기성세대의 인식 차이는 세대 차에 따른 현실의 극적인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지 않는 한 20대 남성은 현재처럼 삐딱한 노선을 계속 강화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평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조선왕조 500년의 변화보다 지난 5년의 변화가 더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년이 아니라 ‘한 달이면 강산이 변한다’로 바꿔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현재의 20대와 50대인 86세대의 차이는 30년이 아니라 30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기성세대는 300살 어린 후세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의 대부분이 압축성장과 급격한 사회 변화에 기인한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인구 축소와 국가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유례 없는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의 원인이 압축 성장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화에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 각자 다른 경험과 처지를 이해하면서 서로 존중하며 대화로 풀어야 한다. 비난하는 태도로 접근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특히 20대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자세는 신중하고 어른스러워야 한다. 이들의 처지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숙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86세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던 김기춘세대-독재(향수)세대-의 실수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설훈, 홍익표 등 일부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20대 비하 발언은 어른으로서 부적절할 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기본이 안 된 대응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의 20대는 지난 정권 때 10대로서 촛불을 들었고,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우리를 감동하게 했던 바로 그들 아닌가.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환호하고, 불리하면 비난하는 감탄고토의 전형이다. ‘오만과 편견’이 하늘을 찌르는 더불어민주당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무엇보다 ‘20대 남성’ 문제 이전에 ‘20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20대 사이에 유행했던 자조적인 표현인 ‘삼포세대’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불만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나친 입시 및 취업 경쟁과 과도한 주거비용, 저임금 및 장시간 노동, 결혼 비용 및 육아 부담 같은 것들 말이다. 20대 여성의 현 정부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미투 운동 등으로 표출된 젠더 문제를 해결할 최초의 기회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지 기존 사회경제적 불만이 해소됐기 때문이 아니다. 이에 더해 남성이라면 군복무에 따른 기회비용을 사회적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상대적 박탈감, 전세금을 비롯한 결혼 비용 마련의 어려움 등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장에서는 같은 나이대 여성들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였던 아버지를 통해 학습한, 결혼하면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모순적 상황이 20대 남성을 반여성 전선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아닐까.


 요컨대 20대 남성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모순을 척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화석처럼 굳어버린 재벌 위주의 독점을 허물고,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을 줄여 좀 더 느슨하게 살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자유한국당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 말자. 민주당은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기업들의 상속세 줄여줄 방안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박근혜 정부 때 20대 사이에 유행했던 용어를 하나 더 인용하면, ‘금수저’들의 특권 강화에 여당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서민을 말하지만 민주당 역시 기득권 체제의 기둥임을 고백하는 행위다. 사정이 이럴진대 20대가 어떻게 현 정부와 여당을 지지할 수 있겠나.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현상을 ‘보수화’로 규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보수화가 맞다고 볼 수 있지만, 앞서 말한 사회경제적 개혁 요구를 고려한다면 20대 남성이 현 정부와 여당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경우 무당파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대변할 세력을 찾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등 낡은 도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누가 이들의 아우성에 응답할 것인가. 한국 정치의 미래가 이곳에 있다.


 PS. 뻔 한 소리라고 생각해 건너뛰려다 사족을 붙인다. ‘김정은 대자보’의 저열함보다도 나를 더 실망시킨 건 한국 사회의 저열한 반응이었다. 특히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운운하며 가택 침입까지 불사하는 구태의연한 대응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보안법 적용이 무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나중에 옥외광고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용 법률을 바꾼 것으로 보이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경찰의 유전자는 그대로라는 사실을 역설하는 장면이었다. 국회에 폭탄을 설치한 것도 아니고, 만우절에 장난처럼 벌인 퍼포먼스에 대한 경찰이 나서는 건 청와대에 대한 과잉 충성이거나 담당자들의 승진 욕심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나도 대자보를 붙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전국 450개 대학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초구 대법원 등에 일제히 붙인 걸 보면 일시에 전국적 동원이 가능한 조직인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이고, 그걸 해소하는 건 저널리즘 영역이다. 수사기관이 나설 일이 아니다.


 일부 야당 의원과 우파 매체들의 반응도 예상대로 천편일률적이다. 표현의 자유 탄압에 앞장섰던 불과 몇 년 전 과거를 잊은 채 환호작약하는 일부 정치인과 매체들의 후안무치함에 화가 난다. 경찰의 과잉 대응이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는 주장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당신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미네르바’ 박대성씨와 ‘쥐그림 포스터’의 박정수씨, ‘근혜공주’의 작가 이하씨와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기자, 그리고 홍가혜씨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부터 하기 바란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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