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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어떤 사람(최유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4-14 17:45
조회
688

최유라/ 지구의 방랑자


 목욕 후에 잔뜩 불어있는 손끝처럼 생긴 밥알이, 영롱한 아이보리 빛깔의 물 안에서 수중 여행 중이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침샘만 더욱 자극된다. 아는 맛이 무서운 법. 참다못해 한입에 털어 넣는다. “캬아~ 이 맛이지!” 차오르는 기쁨도 잠시, 언제 먹었냐는 듯 또 침샘이 작동한다. 고장 난 걸까?


 자기소개만큼 괴로운 게 없다. 딱히 소개할 것도 없건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다 그만 머리가 하얘진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헤매고 있는 사이, 옆에서 이름, 나이, 사는 곳, 순서대로 나열하듯 돌아 돌아 이어진다.
 ‘딱히 그대들의 나이도 사는 곳도 알고 싶지도 않은데 마치 그것이 공식인 양 저렇게 읊을까?’
공식을 부수고 싶은 이상한 욕망이 피어올랐다가 주목받고 싶지 않아 나도 그들과 같은 공식 아래 동행을 결정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유라고 나이는…. 사는 곳은…….”


 언제부터인가 자기소개가 부담스러워서 새로운 공간을 가지 않게 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하는 동안, 그 안에서 흐르는 공기를 견디기 힘들어서다. 어색하기도 어색한데 마치 AI들이 모여 자신의 신상을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입력된 명령 값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군.”이라고 개발자가 흡족해할 것만 같은 상상을 해본다.


 호주에서 5개월 정도 살면서 그곳에서 현지인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
 “왜 한국인들은 처음 만날 때 나이, 사는 곳, 혈액형, 연애 여부, 결혼 여부 등등의 개인정보를 말해?”
 이 질문들에 답을 하지는 못했다. 모르기 때문에.


 관습 때문에? 교육 영향 때문에? 나를 설명할 때 외부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다 웃음이 터졌다. 마치 나는 그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고민 이후 나는 자기소개를 요청받을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주로 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식혜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대게 회사에 커피 머신이 있잖아요. 저의 아주 작은 바람 중 하나는 식혜 머신이 회사에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인데요. 저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복지인 거죠. 다들 식혜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두 가지 정도 있을 텐데요. 비락식혜 혹은 찜질방 식혜. 식혜라고 모든 식혜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 나름의 기준이 있죠. 바로 생강 맛이 나지 않는 식혜. 비락식혜는 생강 맛이 진하게 나잖아요. 제 기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죠. 또 다른 기준은 바로 오동 통통한 밥알입니다. 식혜를 모조리 마시고 남은 달달한 밥알은 마치 월급 다 쓴 후 보너스를 챙겨 받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이유로 저는 비락식혜와 연이 없습니다. 그러면 찜질방 식혜라고 바로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땀을 빼고 목이 타들어 갈 때야 식혜가 담긴 용기에 관심이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식혜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식혜는 도자기 그릇에 담아 마셔야 그 맛이 삽니다. 이것은 저만의 과학으로 실제 과학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렇게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면 끝도 없을 때가 있는데요. 그러다 이렇게 하루에 설탕을 많이 섭취해도 될까 하는 고민이 들죠. 식혜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바로 호박 식혜로 갈아탔습니다. 다들 호박즙이 부기 빼는 데 좋다는 건 아실 겁니다. 그 효능을 바로 연결해…. 쿨럭……. 물론 턱도 없음을 알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저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