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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학기, 학교의 눈물은 몇 리터나 줄었을까?(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31 17:37
조회
730

이회림/ 00경찰서


 여러분은 ‘학교폭력’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요?
 저는 제일 먼저 어느 엘리베이터 안이 떠오릅니다. 한 남자아이가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아이의 막막한 뒷모습은 엘리베이터의 스테인리스 표면에도 흐릿하게 비칩니다. 문득 떠올리면 곧바로 눈물이 왈칵 차오르는 그런 슬픈 이미지들이 몇 개 있는데요, 이 아이의 마지막 모습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예전 기사를 검색해서 찾아보다가 아이가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를 읽으면서 가슴이 턱 막혀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저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몇몇 애들이 알고 있어서 제가 없을 때도 문 열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죄송해요, 엄마 사랑해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기다리고 있을게요. “


 2011년 12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불리게 된 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1년 12월 대전 여고생, 같은 달 대구 중학생, 2012년 1월 광주 중학생 그리고 대전 여고생의 같은 반 친구 등 비슷한 시기에 4명의 아이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가족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범정부 차원에서 학교폭력 TF가 꾸려졌고 2012년 2월에는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이후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를 처벌하게 되었고 각 학교를 담당하는 학교전담 경찰관이 배치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미디어도 힘을 보탰습니다. SBS는 제작 기간만 10개월이 소요된 ‘학교의 눈물’이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함으로써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민적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내었고 고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아직은 고등학생이던 그룹 방탄소년단은 동명의 노래(‘학교의 눈물’ 2013. 1. 20. ‘BTS 믹스테이프)를 조용히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 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1부 ‘일진과 빵셔틀’은 잔인한 폭력이 게임처럼 펼쳐지고 있는 병든 교실로 시청자를 안내하면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그 해결책으로 ‘소나기 학교’를 제시해 줍니다.


 2부 ‘소나기학교’ 에서는 학교폭력의 힘든 경험이 비옥한 땅을 만드는 소나기처럼 그저 지나가는 일로 남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로 만든 8박 9일 임시 학교를 보여줍니다. 소백산 자락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이 ‘소나기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 피해 경험을 용감하게 고백한 14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3부 ‘질풍노도를 넘어’ 에서는 학교폭력이 모든 사회 구성원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시사하면서 전문가 인터뷰와 해외의 학교폭력 사례들 그리고 학교폭력 가해율이 가장 낮은 나라 ‘스웨덴’을 소개합니다.


 다큐에 나온 스웨덴의 다양한 노력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보다 ‘학교법을’ 개정하고 ‘학생권리보호위원회’를 신설한 것이었습니다.


<스웨덴 학교법 제6장 학교폭력에 관한 조치 제9조 ~ 12조>
제9조 “책임 당국 또는 직원은 학생을 굴욕적인 대우에 노출시켜선 안된다”
제10조 “피해자가(학생) 수치심만 느껴도 학교폭력 조사가 시작되고 그것을 입증할 책임은 학교에 있다”
제12조 “피해가 입증될 경우 폭력의 가해자보다 그것을 막지 못한 학교가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이 제도가 2006년 스웨덴 사회에 도입됨으로써 학생권리보호위원회 위원장은 피해자를 대신하여 학교에 손해배상청구(최소 80만~최고 3500만 원까지 배상)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실질적인 학교폭력 문제 개선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학교법을 엄격하게 제정해 놓고 학교에 학교폭력에 대한 의무를 지워 놓으니 학교가 파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교폭력 예방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가해 학생들은 아이들을 괴롭힐 때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고 말하고 또 어떤 학생은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시키는 대로 나약한 장애아동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반면에 피해 학생들은 학교를 가리켜 오로지 ‘눈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012년 ‘학교의 눈물’로부터 10여 년이 흐르고 있는 지금, 아이들의 눈물은 얼마나 줄었을까요?
아마도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2012년과 2020년 학교폭력실태 조사 결과를 통해 어림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먼저 2012년, 2020년 학교폭력실태 조사 개요를 살펴보겠습니다.


 ■2012년 제1차 학교폭력실태 조사 결과 / 2012년 4월 20일 교과부(장관 이주호) 발표■
 -조사 기간 : 2012. 1. 18 ~ 2. 20
 -조사 대상 : 558만 명(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전체 학생)
 -조사 방법 : 우편을 통한 설문지의 발송·회송
 -조사 참여율 : 139만 명(558만 명 중 25% 참여율)


 ■2020년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 / 2020년 1월 20일 교육부(장관 유은혜) 발표■
 -조사 기간 : 2020. 9. 14.~10 .23.(6주)
 -조사 대상 : 초4~고2 재학생 전체(약 357만 명)
 -조사 방법 : 온라인 조사(코로나19 상황에서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조사 진행)
 -조사 참여율 : 295만 명(357만 명 중 82.6% 참여율)


 ‘12년 제1차 학교폭력실태 조사 결과는,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 12.3%로, 전체 응답자 139만 명 중 17만 명의 학생이 피해 경험에 대해 응답하였고 초등학교(15.2%) 중학교(13.4%) 고등학교(5.7%)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피해 유형별로는 협박이나 욕설, 언어폭력(51.2%), 집단 따돌림(13.3%)이 전체 응답 유형 가운데 64.5%를 차지하였습니다.


 ’20년에는 ’19년 1차 조사 대비 학생 1,000명당 피해 응답률 0.9%로 감소세를 보였고 피해 유형별로는 언어폭력(33.6%), 집단따돌림(26.0%), 사이버폭력(12.3%)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1차 조사와 비교하여 다른 피해 유형의 비중이 감소한 것과 달리 사이버폭력(3.4%), 집단 따돌림(2.8%)의 비중은 증가하였고, 집단따돌림은 초> 중> 고 순으로, 언어폭력은 초등학교에서, 사이버폭력은 중학교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년 2월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 되는 등 교육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학교폭력만큼은 크게 감소하는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예측이 있었습니다만, 학교폭력 지표상으로는, ‘19년 대비 소폭 증가하였다고 합니다.(*언어폭력 33.6%, 집단따돌림 26%, 사이버폭력 12.3% 순) 특히 피해 학생의 메신저 계정을 빼앗아 도박 사이트에 팔아넘기거나, 나체 영상에 피해 학생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 SNS에 유포한다고 협박하는 등 사이버 폭력의 비율이 12.3%로 집계되어 ‘18년 8.7%, ‘19년 8.9%에 비해 현저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2012년 이후 10여 년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전히 학교폭력이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변화한 것은 학교폭력의 양상이 ‘사이버폭력’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경찰청은 ‘21년 학교폭력 근절 및 위기청소년 보호 종합 대책(2021년 3월)’을 수립하였고 맞춤형 범죄예방교육의 활성화, 온라인 신고 채널 적극 활용, 청소년 참여 정책자문단 확대 실시 등 학생 참여 중심 학교폭력 예방 활동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 면담을 해 보면 일진으로 불리는 집단이나, 단체 톡방 등 메신저상에서 욕설과 협박을 일삼는 아이들 그리고 장애인 학생을 겨냥한 이유 없는 폭언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계에서도 드러나듯이 카톡 계정, 페북 계정 등을 갈취해 어른들에게 팔거나 돈을 뜯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 협박하는 식으로 신종 사이버 범죄 피해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연이은 아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학교폭력예방법개정, 학교전담경찰관 창설, 117학교폭력 신고상담전화 통합 등 2012년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그 후 10년, 그리고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우리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피해 학생들이 학교를 자퇴하고 ‘학교 밖 청소년’의 길로 가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아이들의 눈물을 줄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용돈벌이 하느라 카톡 계정을 팔아버려 카톡이 없다는 아이들이 주변에 심심찮게 보입니다. 아이들의 계정을 사서 도박, 마약 거래 등의 범죄에 악용하는 이들은 모두 어른들이고 이를 막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른들입니다.


 2011년 슬픈 그날들처럼 아이들이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사회가 다시 총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범죄가 생겨나서 아이들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더 위험한 상황에 던져 놓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