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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아무도 그녀들에게 묻지 않았다(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11 16:39
조회
787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2020년을 앞두고 나는 크게 들떠 있었다. 2년 동안 진행했던 ‘팔레스타인 평화여행’과 ‘인권보고서’ 사업이 잘 마무리됐고, 신규 사업인 ‘여성지원센터’ 사업은 국내 민간재단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여성지원센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전 게시글 참조)


 하지만 1월부터 코로나사태가 시작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해외 출국이 불가능해진 탓에 미리 예약한 비행기 표를 포기하고 출장을 취소했다. 신규사업이라 초기사업세팅이 중요했기에 출장포기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현지의 활동가들이 더욱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아디의 현장 부재가 무색하게 공백을 메꿔 사업을 추진했다. ‘여성지원센터’의 두 가지 주요사업 중 하나인 ‘여성활동가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은 20명의 참여자 중 단 한명의 중도포기자 없이 모두가 끝까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졸업영상작품도 제출했다. (관련 활동은 아디 홈페이지유튜브 참고)


여성지원센터 수료식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문제는 ‘인권보고서’였다. 2020년 보고서 주제는 ‘여성인권’으로 결정했지만 보고서 작성에 필수적인 방문조사와 인터뷰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장의 자발성 덕분이었다.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4명의 여성 활동가들은 인터뷰 수행자(모빌라이저)를 자처하며 각 마을의 세대별 인터뷰 대상자(60대, 40대, 20대 여성)을 물색하겠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그녀들의 자원에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인터뷰시 유의해야 할 사항,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인터뷰 동의서, 인터뷰 기법 등에 대해 2차례 워크숍을 진행한 뒤 그들에게 인터뷰를 맡겼다. 그렇게 현지 인터뷰는 진행됐다.


 인터뷰 진행 초반에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개인적인 어려움과 자신들이 겪었던 폭력에 대해 이야기 해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를 하나씩 전달받으며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고자 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위해 꼭 남기고 싶어 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심각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까지 그녀들의 증언은 다양했다. 덜컥 겁이 났다. 과연 아디가 이들의 증언을 잘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미지는 머리에 히잡을 쓴 무슬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수동적 여성상일 것이다. 아디는 ‘인권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단순한 이미지를 깨고 이들이 우리와 동등한 ‘인간’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디는 그녀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이 건네온 답변은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는가?’, ‘그녀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준적이 있는가?’, ‘그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막상 그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현실만을 탓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11월말 최종 발표를 앞 둔 아디는 이제 전달 받은 증언들을 잘 정리하고 필요한 정보를 추가하여 보고서를 완성하려 한다. 너무도 바쁜 현실을 사는 한국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란 쉽지않다. 그럴 의무도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여성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현지에서 보내온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디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부담스런 의무감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