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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생활ㆍ슬기로운 시리즈(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9-02 17:03
조회
775

이회림/ 00경찰서


 응답하라 시리즈로 인기를 끈 신원호 PD가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에서도 시청률 1위를 달릴 정도로 화제의 드라마가 되었지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 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었다고 합니다. 여동생의 성폭력범을 응징하다가 체포 된 야구스타가 별난 재소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라고 하던데 아직 한 회도 제대로 챙겨 보지는 못했습니다.


 병원과 교도소는 경찰이라면 입직과 동시에 가장 많이 왕래하게 되는 장소 중의 하나이기에 매우 익숙한 공간이지만 드라마의 주요 배경으로서 보고 싶지는 않은 곳입니다. 익숙한 공간이긴 하나 결코 친숙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기로운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슬기로운' 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의 제목부터가 무한한 호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국어사전을 열어 글자 모양마저 남달라 보이는 곱디 고운 '슬기로운'을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슬기로운>
슬기롭다의 ㅂ 불규칙 형용사 '슬기롭다'의 활용형
슬기롭다 즉, 슬기가 있다
‘슬기’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저리해 내는 재능
유의어는 기지, 재치, 현명


 처음 '슬기'라는 단어를 배운 때가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른 생활,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예전에는 세상에 나온 지 겨우 7년에서 8년 된 어린이들을 학교라는 생소한 공간에 모아 놓고 등교 첫 날 위의 책 세 권을 줬습니다. 선생님들은 이 세 권의 가이드북을 길잡이 삼아 바르고 즐거우며 슬기롭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과 자아 정체성은 가정이라는 기초적인 사회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사회생활을 위한 체계적 교육은 이렇듯 인위적 단체인 학교에서부터 책 세권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서울책보고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의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학교는 유치원과 분위기부터 매우 달라서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어떤 아이는 긴장해서 과도하게 떠들고 또 어떤 아이는 긴장해서 아예 말이 없는 등, 각자 천성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반응합니다. 어수선한 교실 안, 처음 보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역시 처음 보는 어른인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책 3권을 받았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제목을 보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른’과 ‘즐거운’은 알겠는데 ‘슬기로운’은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였습니다. 바른 생활과 즐거운 생활은 어렵지 않게 감이 잡히는데 ‘슬기로운 생활’은 다소 차원이 다른 단어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생활은 국어사전의 뜻풀이처럼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고차원적인 생활입니다. 즐겁게, 바르게 사는 사람이 곧 슬기로운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즐겁고 바르게 삽니다.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 과정이 예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늘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맑은 마음으로, 슬기롭게 생활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배워나가야 되나봅니다.


 혹시 신원호 PD의 “슬기로운”시리즈에 "초등학교 1학년 슬기로운 생활'에 바치는 오마쥬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어느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늘 ‘슬기롭게’ 사람들과 관계 맺음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인생 첫 가이드북 “슬기로운 생활” 에 대한 언급이 한 번은 있지 않을까요? 아직 시리즈의 한 회도 보지 못한 시점에서 하는 말이라 드라마 내용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요.


 요즘 모 포털 사이트의 커뮤니티에서 “감빵생활” 과 “의사생활”을 잇는 다음 직업군은 “경찰생활”이나 “형사생활” 이 될 것 같다는 예측놀이가 한창입니다. 현재 스코어로는 경찰생활이 우세한데 소방관, 군인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더군요. 그나저나 슬기로운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감빵생활ㆍ의사생활부터 챙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