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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조건(김아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6-17 20:07
조회
1019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아이
 모자이크 너머로도 상처는 뚜렷했다. 온통 새까맣게 멍든 아이의 눈두덩은 언뜻 귀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눈두덩뿐만 아니라 온몸에 격한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이는 웬만한 성인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결단을 했다고 했다.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창문을 넘어 4층 높이의 빌라 난간으로 맨발을 딛었다.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가지고 있던 어떤 기억 덕분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아홉 살 인생을 내내 지옥에서만 보내지 않았다. 2년 정도 위탁가정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누가 때리지 않는 평온한 하루, 배를 곯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상을 살아본 아이는, 돌아온 제 집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살려면 여기를 나가야 한다는 것, 집 밖에는 도움을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옥을 나온 아이는, 아이의 맨발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영문을 물어오는 어른을 만났다.

소녀
 소녀의 어머니는 신병을 앓고 있었고 당뇨가 심각했다. 부모는 소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중학교 들어가던 해,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살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백만 원 남짓을 벌어오는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이었고, 술에 취하면 자기 엄마를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을 해댔다.


 집 밖도 편하지 않았다. 어머니처럼 신병을 앓는 소녀는 어려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소녀는 종종 집이 아닌 곳, 학교가 아닌 곳으로 나왔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는데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그럴 때 소녀를 찾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 어른들은 소녀에게 돈을 주고 성을 샀다. 소녀는 열아홉 살에 임신을 했고,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의 폭언은 더욱 심해졌다. 낙태 후에도 소녀는 어른들에게 성을 팔다 발각되었고 분류심사를 거쳐 보호관찰 대상이 되었다.



사진 출처 - 영화 <범죄소년>


소년들
 보호관찰 과정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한 소년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심각한 폭력의 가해자인 경우도, 어른 못지않은 사기행각을 벌인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보호관찰 과정에서 소년원으로 보내진 소년들도 많았다. 성인으로 치면 가석방에 해당하는 임시퇴원 과정에서 다시 들어온 소년들도 제법 있다. 우리는 성소수자나 빈자, 노인과 장애인, 여성, 아이들에게 대체로 가혹한데, ‘잘못을 저지른 소년’쯤 되면 어떨까. 좋은 밥을 먹을 수 없고, 책등이 떨어져나간 책을 읽어야하고, 눈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뛸 수 없어도, 죗값을 치르는 당연한 처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소년원에 오기까지 살아온 ‘소년원 밖’의 세상과 어른들이 어땠는가를 들어보면,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어른의 조건
 어른이란 무엇일까. 스무 해나 서른 해 넘게 살면, 결혼을 하면, 부모가 되면,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걸까. 어쨌거나 ‘생물학적인 어른’이 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소한 만으로 20년은 사고나 병, 혹은 자살로 죽지 않고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생각해보면 나쁜 어른이 되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돈을 주고 아이의 성을 사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엄청나다. 아이를 때리고 굶기는 경우에도 그렇다. 자칫하다가는 남은 인생이 매우 곤란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르겠다. 사정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안부를 물어봐주거나, 배고파 보이는 아이에게 한 끼 밥을 먹일 짬을 내거나, 아이를 윽박지르고 때리는 부모를 신고하거나, 소년원 출신이라고 눈흘겨보지 않고 다정한 한 마디를 건네주거나 하는 아주 쉬운 일로도,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손을 내미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 근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