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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ing Eye Dog a guide Dog, A Independence Dog(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29 11:34
조회
879
'안내견, 너를 알려줘!?'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잔인하고 처연한 4월이 끝나간다. 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고 세월호 때문이기도 하고 전두환 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만든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이번에는 21대 국회의원 비례 대표 시각장애인의 장애인 보조견의 본회의장 입장 문제 때문에 ‘안내견’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부각되었다. 이에 한번 찾아봐야할 날이 하나 있다.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테지만. 뚜렷한 날짜 박음도 없이 ‘4월의 마지막 수요일’이라고 정해 놓은 이 기념일은 인터넷 기사 검색을 아무리 해보아도, 달력을 뒤져보아도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일을 이렇게 정해 놓으니 매년 날짜가 바뀔뿐더러 국가적인 행사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4월 29일인 그날은 바로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안내견협회’(International Guide Dog Federation)가 정한 ‘세계안내견의 날’이다. 참고로 97년에는 4월 30일이었다. 성웅 이순신의 날처럼 사람을 기념하거나 특별한 사건을 기념한 것도 아닌,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일개 개(犬)를 기념한 날이고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정된 것은 더욱 아니다. 사실상 세계 안내견의 날은 1989년에 창설된 국제안내견협회(IGDF)가 90년 중반 독자적으로 안내견 훈련조직을 운영하던 미국과 독일이 가입함으로써 명실상부 국제적인 기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1990년에 기념한 날이다.


 12월 3일처럼 유엔이 정한 것도, 우리나라처럼 -비록 정통성은 없었지만- 국가원수가 공포한 날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날을 계기로 시각장애인의 눈이요 생명인 안내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내견의 역사
 '안내견 양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일순간에 앗아갔던 바로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1차 대전 이후 수없이 많은 군인들이 시력을 중도에 상실함에 따라 군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여러 교육과 재활훈련이 시도되었고 그 과정에서 1916년 독일 올덴부르크에 맹인안내견 학교를 개설한 것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당시 독일 국견(國犬)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세퍼드가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3년 독일 포츠담(Potsdam)에 독일훈련학교(the German Training School)가 세워진 것이 체계적인 안내견 양성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지역적이던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세계로 확산시킨 사람은 미국의 '도로시 유스티스 여사(Mrs. Dorothy Harrison Eustis)다. 그녀는 포츠담을 방문하여 독일훈련학교를 견학한 후 큰 감명을 받았고, 이는 그녀로 하여금 훗날 최초의 맹인안내견 학교를 설립, 본격적인 안내견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게끔 하는 계기가 된다. 때마침 그녀는 ‘The Saturday Evening Post’지로부터 원고를 부탁받게 되었고, 그녀는 개들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의 “The Seeing Eye”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게 된다(1927년 11월 5일자). 이 기사가 안내견에 대한 관심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미국 테네시에 살고 있던 시각장애인,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라는 젊은 청년이 이 기사를 보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유스티스 여사에게 자신을 위해 안내견을 훈련시켜 달라는 요청의 글을 썼다. 청년은 여러 우여 곡절 끝에 그녀와 함께 팀을 이루어 버디(Buddy)란 이름의 개를 선택하여 훈련시켰고 결국 성공, 버디를 미국 최초의 안내견으로 등록하게 한다. 그 후, 1929년, 사재를 털어 프랭크와 함께 ‘The Seeing Eye’(www.seeingeye.org)라는 세계 최초의 전문 안내견학교를 설립해, 1929년 2월, 2명의 교사만을 데리고 최초의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해 훈련받은 안내견으로 인해 독립을 되찾은 시각장애인은 모두 17명이었다. 한편, The Seeing Eye는 국제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영국에서의 안내견 훈련학교 설립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된 영국의 체계적인 안내견 훈련은, 1931년 왈라시(Wallasey, Cheshire)의 클리프(The Cliff) 훈련센터에서 시작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대부터 부흥기를 맞는다. 영국에 6개의 안내견 전문훈련학교가 세워지고 여러 유럽 국가들도 안내견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70년대에는 안내견에 대한 개념이 유럽 외 지역 국가들에게 전파되어 일본(1970년), 뉴질랜드(1973년) 등에 최초의 안내견학교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안내견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권29, 忠烈王 8年4月條)에서 부모를 여의고 ‘백구’라는 개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눈먼 아이의 이야기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근대적인 안내견 사용자는 대구대학교의 임안수 교수(현재 대구대 점자도서관장)로, 그는 1972년 말에 미국 유학을 마치면서 세퍼드종 안내견 '사라'와 함께 귀국하였다. 이후 외국기관으로부터의 분양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사후 관리 미흡과 일반인들의 인식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국내기관에 의해 배출된 최초의 안내견은, 1994년 양현봉씨가 삼성안내견학교로부터 분양받은 뷰티이며 97년에는 16마리, 현재 연평균 15마리 정도가 분양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안내견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수요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며, 안내견 양성기관은 비영리 사회단체나 유력인사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삭도우미개학교(1992년), 삼성안내견학교(1994년)가 안내견을 훈련, 무상 보급하고 있다. 일본에는 일왕가족이 활발하게 안내견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삼성안내견학교는 99년 11월 국제안내견협회(IGDF)에 정회원으로 승격되었다. 안내견은 원한다고 모두 분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훈련비용이 많이 들고 제한된 수가 양성되며 실제 생명을 다루다 보니 안내견의 분양자격은 다소 까다롭다. 일단 고등학생 이상으로 활용하는 목적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안내견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국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의 보유 비율이 장애인 대학생에게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안내견에 관한 법과 차별사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 제36조 제3항에는 "누구든지 보조견 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 되어있었다.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어길 시 법 제80조 제1항 제4호에 의거하여 벌금 300만원이 부과 된다.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안내견 출입거부나 차별을 당할 때 바로 이 법으로 항변하지만 실제로 단속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대부분 그 해당시설 관할 주무부서에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또한 정당한 사유라는 애매한 조항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법 조항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었다. 벌금도 실제로 부과된 사례가 거의 없다가 2005년 <내사랑 토람이>의 실제 주인공 전숙연씨가 대형 할인점 카르푸에서 안내견 출입을 거부당하자 이를 고발하여 벌금이 부과된 경우가 최초였다.


 이러한 안내견의 근거 조항에는 장애인 복지법뿐만 아니라 철도청 국유철도여객운송규칙(63조2항)과 도로교통법 자동차운송규정에 맹도견의 탑승조항(개정령 28조)을 두고 있고 대한항공과 같은 항공사들도 자체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항들은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있다.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와 그의 개 버디, 그리고 '도로시 유스티스 여사 (Mrs. Dorothy Harrison Eustis)
자료 출처 : The Seeing Eye 2003 Annual Report


 그러다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9.11테러 당시 주인을 구한 안내견과 그 주인공을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위에서 지적한 ‘정당한 사유’라는 보조견 출입제한 허용규정이 보조견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차별의 근거가 된다고 판단해 4월 폐지를 권고하고 건교부와 각 지자체에도 보조견 사용자 차별금지와 보조견 보급 확대 정책 수립을 권고했다. 이에 같은 해 보건복지부가 ‘식품접객업소 등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보조견의 출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법 규정(장애인복지법 제36조 3항)을 삭제하고 관련법령에 주거시설에서 보조견 사용자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또한 올해 발효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제19조(이동및교통수단의 차별금지)에서 제2항 “②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있어서 보조견 및 장애인보조기구 등의 동승 또는 반입 및 사용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보다 강력하게 명시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에 대한 거부와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 공공건물에서도 안내견이 거부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도 했다. 1995년 7월에는 서울국제라이온스클럽 총회에 참석했던 시각장애인 에드 레빈스 교수는 구내의 내로라하는 호텔로부터 일제히 투숙거부를 당해 총회기간 동안 시각장애인복지관 기숙사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5년 1월에도 서울의 별 6개 특급 호텔에서 안내견을 데리고 호텔을 찾았던 시각 장애인은 완강히 거부당해야 했다. 그 호텔 당직 지배인은 "다른 손님이 불쾌해하기 때문에 장애인 전용식당이 있으면 몰라도 절대로 들어가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해서 더욱 분노를 사게 했다.


 이러한 안내견의 거부는 고위층 경호과정에서 심하게 일어난다. 1999년 4월 영국여왕이 이화여대를 방문하여 안내견과 함께 온 장애인 학생을 만나는 과정에서 경호팀이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이자 여왕이 ‘괜찮다, 함께 만나자’고 하더니 ‘이 개가 너와 함께 강의를 들으니 매우 스마트하겠구나’라고 발언한 일화도 있었다.


 또한 2001년 여성부 출범 기념식에서도 '개가 내빈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과 안내견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경호팀에서 참여 불허를 통보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2005년 전라도지역의 장애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모 대학에서 시각장애인 학생이 기숙사에 입사하면서 안내견과 함께 입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가 전염병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거부당하고 학생들의 항의로 겨우 1학기만 기숙사 이용을 허가받기도 했다.


 안내견 사업은 삼성의 기업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는데 2010년 삼성 비자금 세탁을 위한 그림들이 이 안내견 센터에서 발견되자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은 더 이상 키우지 않고 안내견 사업만 하겠다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장애인 보조견 사업은 처음부터 삼성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삭도우미개학교(現,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가 1993년 10월 시각도우미견을 국내 처음으로 무상 분양한 것이 그 시초이다. 더불어 1992년 한국안전시스템주식회사(현재의 삼성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사업을 실시하여, 1994년 4월 30일 제1호를 분양했다. 이후 삼성이 시각도우미견 보급에 집중하자,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청각도우미견에 눈을 돌렸다. 1999년 6월, 청각도우미견을 국내 처음으로 무상 분양하자, 뒤이어 삼성이 2003년 6월 청각도우미견 분양사업을 시작했으며,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이후 지체도우미견 분양사업을 시작했다. 마치 중소기업이 블루오션을 개척하면, 대기업이 거대 자본으로 밀고 들어와 시장을 독점해오다가 시장 자체를 붕괴시켜 버린 것과 같은 일이 반복돼 왔다.


 이번 삼성의 사업 축소가 크게 비판받는 점은, 그동안 국내 장애인 보조견 사업을 거의 독점해오다시피 해서 다른 민간단체의 참여나 다른 기업의 기부를 막아 공익사업 자체의 성장을 막아 오다, 이제 와서 경영 논리로 사업을 일방적으로 폐지하고 숙련된 전문가들을 해고시켜버림으로써 단순히 사기업의 구조조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보조견 사업 자체를 크게 후퇴시켜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내견 사업을 기업이 하는 경우가 삼성밖에 없었다는 삼성의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 삼성이 안내견 사업을 독점했기 때문에, 국내 관련 비정부 기구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안내견의 국회 입성을 계기로 일부 언론이 삼성을 예찬하는 것은 참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