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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사랑"(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01 12:08
조회
1256

이회림/ 00경찰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 저의 스웨덴 친구 에밀은 여자친구를 만나러 인도네시아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소방관 출신인 그 녀석은 큰 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툭 하면 감기에 걸리고 천식까지 있는, 허우대 멀쩡한 약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에밀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기저질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공항을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 met my love of my life, having so much feelings..”
 저는 상사병에 걸린 듯한 친구의 메일을 읽으면서 사랑은 인종, 국경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도 초월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이 엄혹한 시대에 이토록 고전적인 사랑이라니,,, 문득 마르케스의 대하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콜레라는 피부색이나 가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콜레라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전염병의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숫자를 밝히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가장 일상적인 장점 중 하나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중에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콜레라가 만연하던 시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주인공 페르미나는 사랑하던 애인 플로렌티노 대신에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콜레라 박사와 결혼합니다. 버림받은 남주인공 플로렌티노는 51년간이나 결혼하지 않고 오로지 페르미나 만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콜레라보다 더 지독한 상사병에 걸려버린 그는 사랑하는 이의 남편보다 오래 살아남아 마침내 사랑을 이루고야 맙니다.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의 온도는 약 100만℃를 넘습니다. 태양 표면의 온도는 약 6,000℃인데 표면에서 멀리 떨어진 대기층의 온도가 그 몇 백 배나 되는 것입니다. 화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온도는 그보다 훨씬 낮은 것이 정상일진데 태양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자체가 과학계의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스터리한 것으로 치면 코로나도 코로나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사랑은 마법이라고까지 할까요?


 '사랑'은 제 친구 '에밀'을 움직이게 한 '로맨스'처럼 불타오르는 정열의 시간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J. A. Lee는 다음의 여섯 가지 분류법으로 사랑을 유형을 설명하였습니다.
 열정적 사랑, "에로스“, 유희적 사랑 "루두스“, 동료적 사랑 "스토르게"
 논리적 사랑 "프라그마”, 소유적 사랑 ”마니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타적 사랑 "아가페”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이 여섯 가지 유형 중에 하나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나'를 내어주는 사랑. 주기만 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이타적 사랑을 일컫는 '아가페'가 그것입니다.


 - 현금 100만 원과 마스크를 편지와 함께 경찰서에 기부한 기초생활수급자 70대 할머니
 - 고사리 손으로 쓴 응원의 편지와 마스크를 들고 지구대 경찰관들을 찾아간 어린이들
 -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한 70대 어르신들의 애타는 112신고를 받고 약국으로 함께 가 마스크 구매를 도와 준 순찰 요원들
 - 건강보험증이 없이 숨어서 생활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구청과 함께 “수제마스크 제작 강의”를 열어 준 외사계 경찰관들
- 감염 집중 지역인 대구 경북으로 전달되는 성금과 사랑의 마스크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적이나 마찬가지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적할 최고의 무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 훈훈한 정과 배려심, 즉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출근 할 때마다 나를 맞이해주는 청사 현관의 열화상카메라, 사무실, 엘리베이터, 버스, 기차 안 등 어딜 가나 비치된 손세정제를 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하고 따뜻한 사랑의 보호막에 우리 사회 전체가 둘러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혈관 속에는 코로나의 초고온 현상만큼이나 신비한 사랑의 백신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26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수는 46만 명을 넘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코로나 바이러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 명명하고 주 방위군을 소집하는 등 세상은 준전시체제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화장터를 24시간 가동하고 시신 운구에 군 트럭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사망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졌던 스웨덴은 의료 역량의 한계를 자인하며 일찌감치 진단을 포기해버렸습니다. 반면에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많았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3월 초에 저의 안위를 걱정하던 독일 친구에게 이제는 제가 응원과 염려의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AFP 에드 존스 기자


 우리나라는 신규 확진자 수보다 완치자 수가 많은 경우를 뜻하는 '골든 크로스'가 이어지고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벗어나고 있는 요인으로 정부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손꼽히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동력은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에 있습니다. 이러한 시민의식의 바탕에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의지와 사랑이 있었고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코로나의 초고온 현상이 과학의 신비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백만 배는 더 신비한 ‘사랑’의 확산속도가 언젠가는 확진자의 수를 따라 잡을 수 있도록 내 주변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남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을 되찾기 위해 51년간이나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듯이.. 결국은 집념을 가지고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왠지 좋은 일만 계속 생기고 행운이 가득할 2020년 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새해부터 지구인들을 시험에 빠뜨렸습니다. 마치 인류가 공통의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 얼마나 서로 관심을 갖고 고통에 공감하며 결국은 사랑으로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훗날 제 친구 에밀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열정의 로맨스로, 우리에게는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척하지 않는 아가페적 사랑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산 마스크 20장을 들고 지구대를 찾은 어린 영웅들의 손 편지를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신복초등학교 4학년 000입니다.
이 마스크를 마스크가 없어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좋은 일에 썼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아저씨들 힘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4학년 올라간 초등학생입니다. 저의 용돈으로 하는 거라 선물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잘 써주세요. 감사드려용. 작은 선물이라서 죄송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