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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의 논평에 공감하며 쓰는 글(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1-12 17:27
조회
655

이회림/ 00경찰서


「성폭력 범죄 경찰에게 성폭력을 신고하라는 것인가?
경찰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제하의

2019년 11월 7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논평에 공감하며..


 경찰청이 11월 5일 국회에 제출한 ‘경찰공무원 성비위 및 징계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4~2019년 6월까지 292명의 경찰이 성비위에 연루돼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체 발생 건수 중 경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 비위는 179건으로 61.3%를 차지하고 유형별로는 성희롱이 74.3%, 성범죄가 25.7%이며, 가해자 계급별로는 경위가 81명으로 전체의 45.3%, 경감 37명(20.7%), 경사25명(14.0%) 순 입니다.


대한민국 경찰관 11만8,000여 명 가운데 여경은 1만3,000여 명으로 현재 약 10%를 차지합니다.


 약 10%의 여경 중 남경으로부터 성희롱성 언행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여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여경들은 남경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힘들어합니다. 그저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려니 하고 스스로 마음을 챙겨가다가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피해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일을 경험할 때마다 미리 예상하고 녹음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피해를 입고도 드러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창구가 없으니 친한 여경끼리만 속 얘기를 하고 피해 공유 정도에 그칩니다. 운이 좋아 좋은 주변인을 만나면 혼자 '여자'임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별 문제 없이 안전하게 근무를 하게 되지만, 그렇게 '젠더 감수성'이 풍부한 남경들과 일하게 되는 행운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경은 가해 남경을 피해 타도, 타서로 도망치듯이 옮겨 갔고, 또 어떤 여경은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했다가, '튀는 여경'으로 '찍힘'을 당해 인사철에 불이익을 겪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제 주변에서만 일어나는 극소수의 사례가 아니고 그동안 쉬쉬해 온 불편한 진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여경 대상 성범죄는 경찰 조직 내 대표적인 '암수범죄'입니다.
 여러 범죄 중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직접 신고 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범죄는 실제로 드러나는 수치보다 숨은 범죄의 수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휴직기간을 빼면 제가 여성경찰로 살아 온 지 얼추 13년이 되는데, 그 기간 동안 직접 겪은 조직 내 성비위의 기억을 당장 떠올려보니 범죄 인지가 가능한 것만 3건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비단 저 혼자만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대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성 발언에서부터 허락을 구하지 않은 부적절한 신체 접촉, 강제추행, 준강간, 강간에 이르기까지 남경에 의한 여경 대상 성범죄는 일반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동료 여경, 선•후배 여경과의 대화 속에서 인지되는 성비위를 모두 수치화한다면 국민들 앞에서 차마 밝히기 어려운 부끄러운 통계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추행을 당한 어느 20대 여성이 피해자 진술 조서를 받고 있던 저에게 고맙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저처럼 여경이 되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경이 되면 경찰이니까 사내 성범죄나 성희롱 같은 건 당연히 없지 않냐”고 말하던 그 여성에게 차마 그렇지 않다는 말은 못하였습니다.


 계속되는 남경들의 성비위 행태, 그 중에서도 여경 대상 성범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예방을 도모해야합니다. 특히 야근 후 적절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반강제적인 교육 참여 종용, 남경• 여경 모두에게 공감 받지 못하는 집체 교육, 형식적인 교육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버 교육은 모두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이런 일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소수의 개인적 일탈이고 어느 직종이든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수의 비위 사실로 전체 경찰을 일반화시켜 비난하지 말아 달라’ ‘경찰조직보다 다른 조직이 더 하더라’ 등, 이런 낯 부끄러운 항변은 경찰 제복 입은 자들이 스스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