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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서울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8-07 16:36
조회
1301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Pride! Disability·Enjoy! Disability·Power! Disability
“아무리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고 해도 물리적 장벽이 제거되고 거리에 저상버스가 넘쳐나도, 장애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장애인을 보고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남아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낯선 존재로 바라보는 이상, 장에인에게 우리 사회 역시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자유공간 2007년 11월 12월호 2-3p」(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총장))


나는 ‘장애’인으로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걷는데 목발을 이용하는 40대의 평범한 서울 시민이다. 보다 먼 거리를 이용하는데 단지 전동 스쿠터를 이용하는 조용한 도시의 소시민이다, 그러나 내가 이 서울에서 이동하고 생활하고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나를 보는 사람들을 나를 이 서울이란 도시에서 힘들게 차별받고 고통 받는 ‘장애’인으로 기억하고 고민하고 배려한다. 이 도시를 이루는 여러 가지 것들은 나를 끊임없이 ‘장애’인으로 일깨우고 단지 걷는데 목발을 사용하고 몸을 지탱하는 것에 약간의 지지대가 필요한 김형수란 개인을 단지 사람들에게 ‘장애’인으로 아로 새긴다.


 나와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도 관계의 ‘장애’인으로 느끼게 만들고 차별받게 하며 그들을 동등한 친구나 선후배, 공적이며 객관적인 사회관계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애틋한 도우미나 봉사자로 만든다. 단순한 건축물의 장벽과 구조가 그럴 수도 있고, 입구에만 승강기가 있고 환승역에는 승강기가 없다고 알려주지 조차 않는 일종의 도시 구조가 나와 사람들의 관계를 일그러뜨린다. 지하철역무원에게는 손님이 아니라 리프트를 타고 한번쯤 목숨을 걸어도 되는 존재가 되며, 항상 시설이 없어 늦었다고 변명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 장면 1. 관계의 장애인
 얼마 전, 휠체어를 이용하는 후배와 함께 여의도 국회 앞 빌딩, 지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적이 있었다. 한창 퇴근시간이었고 사람들이 붐비는 많은 식당 중에서 30분 넘게 헤맨 끝에 겨우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조그마한 분식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아줌마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 후배를 보자, “휠체어는 여기서 식사할 수 없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 일행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자리가 있었건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은 우리가 그 말에 나가 주었으면 하셨다.
 물론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장애인이 정말 싫거나 혐오해서 거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님이 몰리는 저녁 시간에 좁은 분식집에 덩치 큰 수동휠체어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곤란하셨거나 식당에 장애인이 있는 것을 보고 식당을 오려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발생할까봐 염려하시는 눈치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식탁에서 의자만 빼면 된다고 해서 겨우 식사를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그런 장애인과 일행이란 이유로 식당이용을 거부당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 장면 2. 시간과 거리에 관한 장애인의 상대성 이론
 전동스쿠터를 타고 7호선 맨 끝 온수역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이 있는 2호선 홍대 입구 역으로 오기 위해서 대림역에서 환승하려고 했더니 환승 구간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7호선 대림역 지상으로 올라와 후배들과 10분을 걸어 2호선 대림역에 도착, 개찰구로 갔더니 승강기는 없고 휠체어 리프트만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겠기에 역무원에게 다음 역에 가서 타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 역무원이 그냥 리프트타고 가라고 해서 리프트에 살짝 실었더니 고장, 괜히 역무원에게 핀잔만 받고 다음 역까지 갔다. 지하철이 끊길 것 같아, 같이 가겠다는 후배들을 억지로 보내고 구로디지털역까지 달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집에 오니 새벽 1시. 일반적으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하였다.


# 장면 3. 보이지 않는 무인도.
 우리 동네에는 서대문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무료버스와 서울시 공영버스로 운영하는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와 굴절버스가 모두 지나간다. 그런데 난 이 두 종류의 버스를 아직 단 한 번도 이용해 본적이 없다. 장애인무료버스에 달린 리프트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찔한 경험이 싫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바쁜 서울을 살아가는 사회인 중에서 30분 넘게 버스를 기다리며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절대 아닐 것이다. 아주 가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여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려고 하면 아직도 간간히 들을 수 있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한마디가 있다. “이렇게 혼잡한데 편하게 집에 있지... 왜 나왔어?”라며 나를 걱정해 주는 여러 시선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난 이 도시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경쟁하여 살아남고만 싶은 삼십대 일뿐이다. 나도 가끔은 출퇴근 시간에 정전이 되어 지하철에 갇혀있었던 찜찜한 기분에 공감하며 직장 동료들의 얘깃거리에 동참하고 싶을 뿐이다. 편하지만 외롭고 삭막한 양로원보다는 불편하지만 언제나 왁자지껄한 마을 노인정이 좋다는 어르신들의 마음에 100%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도시에서 장애인들은 보이지 않는 무인도에서 살아간다.
 도시 외곽이나 그린벨트의 장애인 생활시설이라는 무인도에 살고, 도시 변두리에 임대아파트란 블록으로 만든 무인도에 살고, 우리들끼리 교육하면 편하고 좋다는 이유로 특수학교라는 이름의 무인도에 산다.
 일천 만 명이 넘게 사는 이 도시에서 ‘장애’인이란 내 존재에 늘 각성되어야 하는 나는 그래서, 서울특별시의 서대문구 연남동의 로빈슨 크루소이다. 도시는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이 요구하고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기능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더욱 외롭다. 이 도시는 나에게 ‘장애’를 만들고 느끼게 하고 장애인 카드를 만들게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장애’ 도시이다.



사진 출처 - 구글


# 느낌 1.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에 절망을 느낀다.
 사람들이 이 도시가 만들어준 나의 장애를 보면서 그 불편함과 불가능함에 내가 고통을 받고 차별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큰 차별은 다른 곳에 있다. 도시를 계획하고 투자하는 것에 있어 나와 같은 사람이 항상 지원하고 투자 대상이 아니라 도시 예산에 부담을 주고 다른 일류시민에게 무엇인가 지장을 주고 ‘장애’를 초래하는 사람으로 느낄 때, 그렇게 2류 시민으로 취급받을 때 난 비참하고 또 비참하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탈 수 있도록 승강기를 만들어 달라고 서울시를 상대로 싸울 때, 저상버스를 운영하라고 요구할 때 서울의 도시가 정치적 권위의 상징 기능밖에 없는 여의도 국회의 둥근 청동 지붕의 장식과 그 장식의 청소를 더 우선시 할 때, 이미 ‘장애’를 부여받은 시민과 나는 서울특별시에서 밀려나 있다. 우리가 장애인에 대한 도시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할 때 관료들은 늘 예산 부족을 말한다. 그런데 모든 도시민의 욕구를 채워줄 수 예산은 항상 부족하다. 문제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예산의 ‘우선순위’인 것이다.


# 느낌 2. 상암동 하늘 공원에 가면 가끔 서울 시민이 될 수 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가끔 하늘 공원을 간다. 한강 둑을 따라 스쿠터를 타고 애인과 강바람을 맞으며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긴다. 물론 우리를 보는 많은 사람들은 시설에서 나들이 나온 장애인과 도우미로 생각하고 애틋한 눈빛을 보낸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계는 앞에 가는 저 팔짱끼고 가는 연인들처럼 닭살스럽다.
 한강에서 하늘공원까지는 나에게 ‘장애’를 부여하는 장애물이 별로 없다. 다른 서울 시민들처럼 강바람에 몸을 맡기며 갈대밭 사이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며 데이트를 즐기게 하는 나무 경사로와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다. 물론 하늘공원 서비스센타에서 전동 스쿠터를 충전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종종 거부하시기는 하지만.
 생태 공원으로 만들어진 청계천 양 끝에 멋진 경사로가 있어 청계천에서 나는 서울 시민이 될 수 있지만, 중간에도 내려올 수는 경사로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여자 친구를 먼저 내려 보내고 혼자 멀리 에둘러 보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물가 앞까지 안전하게 내려 갈 수 있는 돌담길이 있다면 여자 친구 혼자 물장구치는 것을 등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 하는 애잔함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과 시․청각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위한 도시계획과 건축물들이 도시의 상징이 되고 기호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복잡한 출근길에 시달리고 동네 슈퍼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물건을 사고 지역의 은행과 우체국을 드나드는 것. 가까운 지역의 수영장에 갈 수 있고, 걷고만 싶은 거리가 아니라 전동 휠체어도 접근 가능한 거리에서 동네 주민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진대, 안타까운 일이다.


Pride! Disability·Enjoy! Disability·Power! Disability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에서 2007년 무장애일터만들기 NGO 기관 순례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용한 모토이자 캠페인. 그 중에서 Pride! Disability는 장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뜻하는 Disability Pride의 변용이다. Disability Pride는 장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기도 하다. ‘장애와 자부심(Disabled and Proud)'이란 모임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Disability Pride는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인 부분에서의 다름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장애가 다양한 사람의 모습 중에 일부로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공표하는 것이고 장애에 낙인을 두는 사회구조에 대한 도전이며, 오랫동안 장애억압적인 사회가 규정한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믿음과 느낌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자유케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Sarah Triano 2004- " 「장캐 2007 vol 27 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