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7-11 15:51
조회
32


이회림/ 00경찰서


 2010~2017 수사기관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애인 관계에서 폭행, 강간과 같은 5대 범죄의 피해자 수는 한 해 평균 약 7,300건에 달합니다. 2016년 발생한 살인 범죄의 가해자 중 73%가 피해자의 지인 즉 이웃, 애인, 친척 등이었습니다. 이는 골목길에서 만난 수상한 사람보다 귀갓길 집 앞에서 만난 동료가 사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2009년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여성 10명을 연쇄 살인했다 붙잡힌 강호순에 대해 이웃들은 ‘그럴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처럼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항상 겉보기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만약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리는 위험 신호를 우리가 용케 알아차린다 해도 일단 정서적인 인간관계에 눈이 멀면 문제가 되는 중요한 정보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큰 불이 일어나기 직전에 화재경보기가 연기를 감지하고 쉴 새 없이 울리는데도 귀를 닫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난 수상한 사람은 딱 보면 알아!' 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대개 우리가 보는 건 겉모습일 뿐입니다.


 서울시내 모 경찰서에서 악성 사기범 검거 전담팀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50대 왕고참 선배님과 둘이서 팀을 이루어 70대 사기 수배자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우리는 수배자의 흔적을 찾아 서울시내 곳곳과 부천, 광주광역시 등을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부천의 모 병원에서 일주일간 잠복수사를 해보기도 했으나 결국은 검거하지 못하였습니다. 타인명의의 휴대폰을 여러 개 사용했다가 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절대로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소한 디지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쳐 지나간 거의 모든 장소를 탐문하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 그 분,, 항상 흰색 옷을 깔끔하게 입고 말도 세련되게 하던 어르신이예요. 그런데 경찰이 왜 그런 분을 찾으세요?”


 흰색 수트를 즐겨 입고 ‘신사’라고 불리던 그 어르신이 알고 보면 사기전과가 수 십개이고 입만 열면 거짓말로 자신을 꾸며대는 어둡고 초라한 사람임을 간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기꾼은 숨 쉬는 것 빼고 전부 거짓이라는 말에 딱 맞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우리가 누군가를 처다볼때 보통 0.1초 만에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해 버린다고 합니다. 0.1초는 누군가의 특성을 추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지만 그렇게 내린 결정은 오래갑니다. 겉모습은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어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무시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평생 선량한 사람들을 교묘히 속여 온 사기꾼을  ‘신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이런 보통의 심리를 사기꾼들이 잘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순둥이같이 생긴 어떤 20대 남자가 형사과 사무실로 잡혀 왔는데 수갑을 찬 채 조용히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말투가 어눌하고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했습니다. 요즘 말로 ‘초식남’ 느낌이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범죄로 잡혀 왔나? 얼굴 보니 강력범죄는 아닌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동료에게 물어보니, 길거리에 망치를 들고 나가 지나가는 여고생의 머리를 때렸다는 것입니다. 그 여고생과는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 중에 눈에 띄어서 때렸다고 진술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여고생에게 치명타를 입히기 전에 행인들로부터 제지당하고 잡혀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첫인상에 폭력의 냄새가 전혀 안 나는 사람조차도 알고 보면 망치를 든 순진한 얼굴의 사이코패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험한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선량한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을 숨긴 채 우리들 속에 섞여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이 얼굴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 또한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외모는 꾸며낼 수 있고 겉보기에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동기까지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을 잘 돕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돕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의 얼굴이 혼자 있을 때의 행동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모습도 자세히 들여다 봐야하는 것입니다.


 위의 70대 사기꾼, 망치 든 순둥이 청년, 그리고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사례처럼 누구든 겉모습은 꾸며 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판단해야 안전합니다. 반대로 겉모습이 비호감일지라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수 있으니 첫인상이 나쁜 사람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첫인상이 호감형이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잘 하는 듯한 말을 하더라도 만나면 만날수록 물음표를 그리게 되고 신뢰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호감이 가고 타인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긍정적 감정은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자석처럼 사람들을 잡아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들만 주변에 많이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오로지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쓴맛을 선사해 주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 보다 범죄 피해를 입을 피해가 더 많다고 합니다. 혹시 나의 주변에도 겉모습만 호감형인 사람이 있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 위험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 있는지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일상속에서 직관력을 키우다보면 누군가로부터 범죄의 기미가 스멀스멀 피어날때,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