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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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5월 아침의 작은 생각 (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5-09 18:02
조회
35

이회림/ 00경찰서


 5월의 어느 날 아침입니다.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
오늘은 다홍색 꽃이 수놓인 니트를 입으셨네요. 입술을 살며시 움직이며 생글생글 소리 없이 웃고 계시지만 항상 같은 표정입니다. 할머니는 어깨에 작은 검정색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데 그 안에는 오늘 만나게 될 고객들을 위한 준비물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저 할머니는 왜 매일 저렇게 서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들을 기다려야만 하는지,, 마음이 아파오는 것도 잠시 뿐, 저는 출근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할머니를 지나치면 노숙인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금은방 처마 밑에 드문드문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떤 노숙인이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외칩니다.


 “야! ㅂㅈ야!”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황당한 호칭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봅니다. 아까 그 할머니와 같은 연배로 보이는 깡마른 할아버지가 저를 쳐다보며 웃습니다. 쓰러지듯이 앉은 모습으로 아래 위로 훑어 보던 그 시선... 손녀뻘 되는 사람에게도 저런 눈빛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거북할 뿐 아니라 괴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보고는 인상 한 번 찌푸리고 모두 제 갈길을 갑니다.


 ‘방금 쳐다보고 간 아저씨한테 목격자 진술 부탁드리고 저 할배를 모욕죄로 현행범 체포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스쳤다가 사라집니다. 형벌보다는 치료가 더 시급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에 한숨만 새어 나옵니다.


 출근길에 그 노숙인 할아버지를 보니 작년 늦여름부터 추석 연휴 전까지 구청 직원들과 함께 노숙인 자활 지원 활동을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파출소의 ‘ㅌ공원’ 담벼락에는 일 년 내내 매일 20~30명의 노숙인들이 술판을 벌입니다. 그 중 5~6명 정도가 담 아래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는 식으로 상주하는 노숙인들이고 나머지는 공원 뒷 문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점심 식사 한 끼를 먹기 위해 잠시 들렸다 갈 뿐인 비 상주 노숙인들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저는 추석이 시작되기 직전 약 2개월 간 구청 ‘자활주거팀’ 직원들과 함께 매일 오전 10시 경 ‘ㅌ공원’의 담벼락으로 갔습니다. 구청 직원들은 노숙인들이 노숙생활을 접고 인근 쪽방촌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설득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저는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 모습을 지켜보거나 사진으로 남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렇게 노숙인들과 마주하다보니, 어느새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노숙인들은 한 가족이 전부 노숙생활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70대 노모가 40대 후반의 두 형제와 함께 담 밑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노모는 길거리에 버려진 종이와 페트병 등을 주워 근처 고물상에 갖다 파는 식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반면에 두 형제는 늘 담벼락 밑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거나 대낮부터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경찰들 뭐하냐, 저것들 좀 안 치우고!’ 하며 항의를 하기 일쑤였고 공원 주변이 항상 노숙인들로 가득해서 냄새가 나 견딜 수 가 없다는 주변 상인들의 민원도 극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질서 파괴 행위가 목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민원이 들어오면 잘 달래서 돌려 보내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숙인이라해도 사람을 향해 물건 가리키듯이 ‘저것’ 이라고 지칭하거나 ‘치워’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에는 울컥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노숙인 형제와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은 노숙인 두 형제 중 큰 형이 인근 건물에 상가를 임대하고 있었고 무려 전직 기타리스트라는 것이었습니다. 재산도 있는 사람이 노숙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그저 답답해서라 고만 간단히 대답하였지만 눈빛에서는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마침 함께 지원 나간 순찰요원 김 순경이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하고 왔기에 기타리스트 노숙인과 서로 말이 잘 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성 착한 김 순경은 갑자기 그 노숙인의 손을 덥석 잡더니, “아저씨. 얼른 노숙생활 청산하시고 같이 밴드해요. 제가 드럼치고 아저씨가 기타 잡으시면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숙인과 매일 얼굴 마주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던 저는 노숙인들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는데, 그 날 처음 노숙인을 만난 김 순경은 맨 손으로 그의 두 손을 잡고 진심으로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저는 저보다 까마득한 후배인 김 순경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소통하는 척, 위하는 척 했지만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그 기타리스트 노숙인 아저씨는 쪽방촌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답답해서 닫힌 공간이 싫다던 아저씨의 고집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구청 직원들의 노력뿐만아니라 김 순경의 온기가 더해져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기타리스트 아저씨의 쪽방에 작은 화분을 사서 들고 가 나름 조촐한 집들이 선물을 드렸고 아저씨는 자신의 한 평 남짓한 방을 보여주며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 아저씨는 그 뒤로 겨울을 쪽방에서 무탈하게 보내셨지만 봄이 오니 다시 그 공원 담벼락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70대 노모는 쪽방에 방을 두고 공원으로 마실 나오는 식으로 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어느 할아버지 노숙인이 저를 향해 말 같지도 않은 단어를 내 뱉으셔서 모욕을 느꼈지만 그건 잠시 뿐,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올라와 할아버지를 탓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제가 경찰살이를 통해 길거리에서 배운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김 순경처럼 착한 심성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런 맑은 후배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 매일 그들로부터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아래와 같은 구절이 마음에 와 닿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소년이 거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배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스티븐슨-


 우울하고 힘겹게만 보이는 타인들의 삶을 매일 스쳐지나가지만 그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느끼고 배우고 또 두고두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굉장한 특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놈의 경찰살이 힘겨워도 계속하게 되는가 봅니다.


 자~ 이제 사무실 앞에 다 왔습니다. 5월 아침, 출근길에 참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늘도 길거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