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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금수저들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36
조회
323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가운데 적잖은 분들이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던 게 불행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저 광대한 만주벌판이 지금도 우리 영토였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고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라고 배우는 게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라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진짜로 고민해야 하는 건 오히려 ‘왜 고구려·백제가 아니라 신라였을까’ 하는 주제다. 헬조선 탈출 해법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지도를 펼쳐 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대사회는 농업생산력이 국력이던 시절이다. 농경지가 부족한 신라는 약소국의 숙명을 타고났다. 험준한 자연지형이 방어벽이 돼 주는 게 그나마 행운이었다. 초기에는 가야한테 치이고, 고구려 속국으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 7세기엔 날이면 날마다 외침에 시달리는 말 그대로 ‘헬 신라’였다. 그런데 어떻게 신라였을까. 고구려·백제의 분열과 당(唐)나라와 고구려의 갈등 같은 외부요인들 덕분에 어쩌다 보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온 것일까.


삼국은 모두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민(人民)은 원래 고대사회에서 지배계급인 인(人)과 피지배계급인 민(民)이라는 완전히 다른 신분을 가리키던 용어다. 당시에 ‘민’이란 말 그대로 개·돼지나 다를바 없는 존재였다. 골품제라는 건 ‘인(人)’ 중에서도 많아봐야 수백 명에 불과했을 극소수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였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성골과 진골을 생각해보면 금수저도 이런 금수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신라에선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신분제를 조금은 완화하는 개혁 조치를 취했다. 가야 왕족 출신인 김유신이 태종 무열왕을 도와 신라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으로 활약했다는 점, 화랑 제도를 통해 특진이라도 할 수 있었던 이들이 존재했다는 점이 그런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김유신이 전장에서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친아들인 원술을 내쳤다는 점이다. 그 정도 책임감이 있었기에 지배계급으로서 부하들에게 희생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신라는 지배집단이 단결해서 국가능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illllll.jpg?type=w646사진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외교를 통한 통일이라는 것도 손쉽게 폄하할 문제가 아니다. 신라로서는 고구려와 백제한테 고립돼 있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외교는 필수다. 적어도 김춘추, 그러니까 태종 무열왕은 목숨을 걸고 직접 험난한 바다를 건너 당나라를 찾아가 동맹관계를 맺었다. 뒷날 신라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당나라에 맞서 대규모 전쟁을 치렀고 승리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당시 신라 지배층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고구려나 백제는 당시 국제관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다.


물론 신라는 통일 이후 안정을 찾자 급속히 옛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신분제가 다시 공고해지며 활력을 잃어갔다. 그 결과 후고구려, 후백제, 고려가 차례로 등장해 결국 신라를 무너뜨렸다. 왜 고구려·백제가 아니라 신라였는지 생각해보면 왜 견훤이나 궁예가 아니라 왕건이었는지 납득이 간다. 결혼동맹을 통해 지배세력을 단일대오로 묶어냈고 신라를 전략적으로 우대함으로써 스스로 항복하도록 유도했다. 견훤은 군사령관으로선 정말이지 특출난 영웅이었고 전투에선 여러번 왕건을 패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끝내 전쟁에서 이긴 건 왕건이었다.


신라와 고려를 되돌아보면 지배집단, 요즘말로 국가 엘리트들이 전략적인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위해 힘을 합하는지, 그리고 적절한 양보와 솔선수범을 통해 민중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특히 국제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외교에 힘을 쏟는 것은 국가의 생사를 가른다. 안으로는 '개·돼지' 피를 빨아먹는 것으로 호구지책을 삼고, 밖으로는 호구짓과 동네북으로 일관하는 21세기 한국 집권 집단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금수저들이여, 야망을 좀 가져봐라."


이 글은 2016년 7월 1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