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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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를 출범하며 (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35
조회
409

이동화/ 아디 사무국장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셀림이라고 합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찾아간 바그다드에서 동네 아이들이 저를 보고 “셀림, 셀림”이라 불렀을 때부터였고, 뜻은 아랍어로 건강한 청년, 한국어로는 돌쇠나 마당쇠 정도일 것입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 저를 셀림이라고 소개하며 힘들었지만 즐겁게 반전, 반점령 활동, 그리고 아랍어 공부를 하였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운이 좋게 민변이라는 훌륭한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민변에서 국제연대 및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조금씩 셀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주저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인권상황을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마음속으로 현장에 대한 부채감이 더 쌓여갔기 때문이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부담이 커져갔습니다.


20160706web02.jpg사진 출처 - 필자


꽤나 긴 시간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활동가의 삶과 가장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 전 다시 팔레스타인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곳 친구들을 만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그곳도 현장이고, 한국도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존 그 자체도 녹록치 않지만 본인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위해 저항하며 싸우는 모든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현장이었습니다. 반드시 팔레스타인이고 이라크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시아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과 함께 할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고, 현장의 현실을 한국에 알리고 한국에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활동을 진행할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함께 할 사람을 찾으려 할 때 아디가 곁에 있었습니다. 우연과 인연이 만나는 순간이었지요. 저는 20대 때 학생운동을 했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녀오면서 현장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30대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민변에서 국제연대활동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40대 초반인 지금 3명의 아디 활동가분들과, 한국에서 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들과 함께 10년의 활동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조금 천천히 갈지라도 현장과 주변의 활동가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꾸준히 가보려 합니다. 이 공간을 빌어 아디의 시작을 알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2016년 7월 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