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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로는 안 될 것 같다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57
조회
341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기억 하나
2004년쯤이었을 거다. 지역의 한 선배가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 선배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자리에 갔었는데 오랜 시민단체 경력 때문인지 전국에서 온 축하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런저런 식순 끝에 당시에 꽤 지명도가 있었던 교수 한 분이 축하 인사말을 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노무현 정부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가벼운 질책성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그 교수에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자기가 속한 당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였다. 전반적인 축하 인사말 끝에 나온 짧은 비판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거슬렸던 것이다. 식장은 한참을 술렁거렸고 순식간에 개소식 분위기는 차가워지고 말았다.


기억 둘
올해 4.13총선 기간 동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붙잡기 위해 광주, 전남지역을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문 전 대표와 동행한 인터넷신문의 생방송을 잠시 시청했다.


문재인 대표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 그 순간 문재인 대표를 둘러싸고 있던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이 화를 내며 기자에게 항의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무슨 지지를 받고 있단 말입니까? 그거 다 종편에서 조작질한 거예요, 질문 똑바로 해요.” 당황한 기자는 질문을 바꿔서 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의 그 선배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고 종편의 조작질이라고 주장하던 호남 민심은 실제로 국민의당 압승의 결과를 보여줬다.


2000년 이후 한국 정치현장에서 정치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이른바 무슨 무슨 ‘빠’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된다. ‘노빠’ ‘문빠’ ‘안빠’ 등 어감도 그렇지만 실제 이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자들을 일컫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사례처럼 ‘빠’들의 특징은 맹목적인 지지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무오류를 주장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약간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지 정치인의 조그마한 정치적 행보는 유치할 정도로 크게 의미를 두어 해석하는 반면, 라이벌 정치인이나 반대정당은 폄하하고 깎아내린다.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 이러한 움직임은 훨씬 심해지는데 지난 4.13총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문재인과 안철수로 대표되는 거물 야당 정치인을 두고 양쪽의 ‘빠’들이 펼치는 SNS상의 네거티브 공세는 극에 달했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보다는 서로 상대진영의 대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흠결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날 선 공격만이 가열됐던 선거기간이었다. 그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아마도 내년 대선 때까지는 날로 더 치열해질 것 같다.


6e2501a.jpg사진 출처 - 경향신문


현실에서의 선거는 무엇일까?
선거는 상대 후보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투표행위를 하게 해야 성공하는 정치행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내 공약을 모르는 사람들을 알게 만들어야 하며, 기존에 지지하던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그 지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를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표의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지지자 외에 무관심층과 반대편의 지지까지 끌어오기 위해서는 후보인 나와 지지자들이 표를 끌어올 수 있는 확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빠’는 그 확장성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만을 거듭 확인하면서 중도층이나 반대편에서 표를 끌어올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없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나 당에 대한 조금의 부정적인 의견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반대편에 지지를 물어볼 의사도 없는 것이다.


표를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해봤자 자기와 같은 지지자들로만 연결되어 있는 SNS상에서 서로 격려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현실 선거에서의 표 확장성과는 의미가 없는 행위들만 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빠’가 아니라 포용력 있는 ‘지지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정말로 지지하는 후보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원한다면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감성팔이를 하고 있는 시간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제대로 된 언론 기사 한 대목이라도 단체 대화방이나 문자로 보내려고 노력하기를 권유한다.


다른 당 특히 같은 야당 정치인 흠집 내기는 제발 그만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을 알리는 것이 지지후보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저 정치인은 저래서 안돼라고 욕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더 호응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속성상 성인군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의 비판과 비난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면 왜 그런 비판과 욕을 얻어먹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박근혜의 10년은 4대강과 세월호, 그리고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점철된 민중잔혹사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그 잔인한 세월을 끝내고 싶은 현실적인 방안의 한편을 끼적거려 보았다.


이 글은 2016년 5월 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