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느리게 좀 더 느리게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25
조회
298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초등학교 다닐 적 이맘때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남해의 작은 섬에 있는 외가댁에서 며칠씩 놀다 오곤 했다.


그때를 기억하면 오가는 여객선에서 마주하는 섬, 바다, 하늘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불러내온 기억 중의 하나는 여객선이 지나는 섬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다. 그분의 누런색 집배원 가죽가방에는 신문, 각종 고지서는 물론이고 아마 해안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연애편지까지 담겼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그 집배원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인이셨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둘러맨 집배원 가방이 휘청거릴 정도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섬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몇 달 전에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20층이 넘는 건물이다. 당연히 입주해 있는 각종 사무실도 이전 건물보다 훨씬 많다. 택배 물량도 많기 때문인지 1층 주차장에는 택배 차량의 주차와 이동을 원활하게 하려고 따로 지정 주차구역을 만들어 놨다.


승강기에서 만나는 택배 기사들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아올린 화물을 이동 수레에 싣고 열심히 운송장을 살피는 모습들 말이다.


얼마 전에는 한 택배 기사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는 택배 업무 외에 물류작업까지 떠맡으면서 오전 6시부터 네 시간 이상의 무임금 추가노동에 힘들어한다는 사연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런 사연 외에도 택배와 관련된 언론 기사는 과중한 노동시간, 불합리한 요금구조, 불친절 등이 주를 이룬다. 해가 갈수록 택배 물량은 늘어나는 데 비해 택배 회사의 화물처리량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이를 택배 노동자들의 과다노동, 건당 택배 비용저하 등으로 대체하는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택배 화물은 하루, 적어도 이틀이면 도착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택배 회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배달 속도경쟁이 붙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책 같은 경우 오전 일찍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보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이렇게 빨리 화물을 받을 수 있지만, 우체국 우편요금체계인 빠른 등기, 익일특급과 같이 빠르게 보낼수록 요금을 더 내는 일은 없다. 택배 회사에서는 좀 더 선진화된 배송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택배 노동자의 고강도 노동은 애써 감추어 버린다.


언젠가 중고사이트에서 책을 주문하고 토요일이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택배가 도착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배송조회를 해보니 배송 절차가 금요일에 멈추어 있었다. 그 택배 회사는 우체국이었는데 우체국은 토요일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주 5일제 노동자인 나는 그동안 타인의 주 6일제 근무를 너무나 당연히 수용하고 있었다(우정사업본부는 지난 6월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으나 노동조합에서는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한 상태에서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는 것은 집배원 모두를 죽이는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MF9B7520.jpg사진 출처 - 참세상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속도를 그 기본조건으로 하는 것 같다. 인터넷, 배달음식, 교통수단, 택배에서부터 심지어 아이들의 공부까지 선행학습이란 기묘한 이름으로 속도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받는 질 좋은 서비스가 누군가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서비스는 부당하다. 불의하다. 택배, 인터넷, 음식배달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는 것만큼 빨라진 서비스라면 이제 그러한 속도에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빨라지는 속도만큼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소외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위험한 속도경쟁이 아닐까?


다시 기억을 옛날로 돌려본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집배원 아저씨가 외가가 있는 섬에서 내린다. 언제나처럼 휘청대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마을회관에 들른 다음 이집 저집에 들러 우편물을 전한다.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온 우편물은 옆집에다 맡기고 늦은 점심을 국수로 때우는 집에서 국수도 한 그릇 얻어먹는다. 술판이 벌어진 가게 앞에서는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며 마지막 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객선을 기다린다.


혹시 우리가 꿈꾸는 노동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속도가 아니고 말이다.


이 글은 2015년 7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