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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가치를 벗어난 진보 (송채경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22
조회
267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TV조선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건 언론이 아니라 사회악이야.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조선일보를 세무조사해서 없애는 거야.”

“보수 정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그 이상으로 휘두르고 있는데 진보 정권에서는 그걸 제대로 못 했어. 진보는 권력을 좀 더 확실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해.”

최근 진보 진영 지지자임을 자처하는 지인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다. 스스로 소위 ‘깨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는 얘기 치고는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의견들이었다. 이들의 감정은 격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거였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부터 시작해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까지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중도·진보 진영이 선거 때마다 지는 이유를 이들은 종편의 횡포, 한쪽으로 쏠린 권력구도 등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찾았다. 결국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진보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권이 당신들이 싫어하는 보수 정권과 도대체 다를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지만 이 질문은 그저 메아리로 돌아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결론은 없었다. 진보 진영이 민주주의를 위한 명분이나 지나친 도덕주의에 집착해 권력을 계속해서 잃느니 이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은 다음에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을 또 다른 권위주의에서 찾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박은 그저 ‘교과서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다. 답답한 표정을 짓자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몇 년 전엔 너와 똑같은 얘기를 했어. 그런데 계속 그런 모범답안 같은 주장만 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지 않아?”

최근 또 다른 지인은 <한겨레>가 쓴 성남시 비판 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왔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성남시가 정작 지역 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이 사실을 11시간 동안 숨겼다는 게 주요 기사 내용이었다.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를 이유로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지인이 제기한 불만의 요점은 이거였다. “같은 진보끼리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비판해서 보수 세력이 더욱 판을 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면 어떡하나?” 둘 사이에 저널리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역시 결론은 없었다. ‘팩트’에 입각한 기사의 중요성과 언론이 대상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댔을 때의 문제점을 설명했지만 그를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끝까지 <한겨레>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서일까. 진보세력을 싸잡아 ‘종북’으로 몰아가는 종편 채널이 꼴보기 싫어서일까. 보수는 무능하고 진보는 유능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물론 이들을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말할까 싶다. 결국 이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주며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의로운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진보적 가치’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지키지 못 한 채 권력만 마음껏 휘두르는 세력이 과연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까. ‘진보 세력’의 승리를 위해 원래의 목적이었던 ‘진보적 가치’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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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재보선 결과에 대해 사과하려고 마이크 앞에 서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누가 한때는 합리적이었던 나의 지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130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진보적 가치’를 뿌리내리는 데 실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들은 아직도 ‘안티 박근혜’ 구호 뒤에 숨어 ‘사회·경제적 대안 없음’이라는 자신들의 무능력함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지인들을 포함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문제는 보수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