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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이라는 포퓰리즘 (신혜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47
조회
606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기원전 2세기 로마 공화정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당시 로마는 전쟁이 잦았고, 시민들은 군복무를 하느라 토지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이 와중에 노예를 부리는 대농장 제도인 ‘라티푼디움’이 성행하면서 군소 자작농들은 대기업 대형마트 옆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신세가 됐다.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 시민들은 땅 한 뙤기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를 지켜본 그라쿠스는 호민관에 당선된 후 국유지를 공평하게 나누는 농지 개혁을 실시했다. 배를 곯던 평민들은 그라쿠스의 주장에 환호했다. 독재자 출현에 대한 우려로 호민관 자리는 재임을 허용하지 않는 게 관례였지만, 그라쿠스는 평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재선 출마까지 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정치를 뜻하는 ‘포퓰리즘’의 어원이다.


청년수당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저성장 사회에 접어들고, 정규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워지자 청년들의 처지가 궁핍해졌다. 학업, 취업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 청년의 절반이 서울에 거주하는데, 서울 청년의 주거빈곤률은 40%를 훌쩍 넘는다. 적어도 3명 중 1명은 반지하, 옥탑방, 불법개조 건축물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체감 청년 실업률은 작년에 20%를 넘겨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들 앞에 청년수당이라는 선심성 정책을 내놓았다. 저소득층 서울 청년들에게 매월 50만 원의 보조금을 최대 6개월까지 지급하겠단다. 취업 보조금 명목이지만 유흥비가 아니라면 본인의 필요에 맞게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사실상 ‘공돈’이나 마찬가지다. 이 정책을 적극 지원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 명이다. 그도 그라쿠스처럼 연임을 노리는 걸까?


20160907web02.jpg서울시 청년수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미지 갈무리
사진 출처 - 서울시


문제는 포퓰리즘의 동의어가 민주주의라는 점이다. 포퓰리즘의 어원인 ‘포풀루스(populus)’는 라틴어로 ‘인민’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democracy) 역시 인민을 뜻하는 그리스어 ‘demos’에서 파생된 단어다. 둘 모두 대중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서울시는 지난 1년간 청년 당사자들로 구성된 협의 기구를 운영하며 청년들의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을 고민했다. 그 결과가 청년수당이다. 저임금 아르바이트에 시달리지 않고 본인의 장래를 계발할 시간을 갖는 게 절실하다는 청년들의 요구가 적극 반영됐다. 정부의 청년 예산 대부분이 비정규직 인턴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보조금으로 흘러들어간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청년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는 없었다. 청년들이 인턴과 단기 일자리를 원하는지와 관계없이 취업률 지표를 쉽게 높일 수 있는 수단을 택한 셈이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수년 간 2조원의 청년 관련 예산을 집행해왔지만 청년 실업률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로마 공화정에서 토지 재분배가 이뤄질 당시 공화정의 원로들과 부자 평민들은 그라쿠스의 정책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들은 이런 정책을 ‘생각 없는 우중의 선택’이라며 폄훼했다. 그래도 민중들의 그라쿠스에 대한 지지가 계속되자, 호민관 투표일에 광장에 모인 그라쿠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후 로마 공화국은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귀족 중심 제정으로 넘어간다. 청년들의 필요를 반영한 정책에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로마 공화정의 귀족들과 같은 행보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왜 합의를 해주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나와(복지부와) 합의 되지 않은 복지 정책은 시행할 수 없다’며 서울시 청년수당에 대한 직권취소 명령을 내린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현하려는 정치사상.” 캠브리지 사전이 정의하는 포퓰리즘의 뜻이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다. 청년 정책에도 포퓰리즘 도입이 절실하다.


이 글은 2016년 9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