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계종의 2008년 약속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손상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52
조회
402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지하철에서 어린아이를 놀려 재미있다는 어르신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아이를 울리기까지 하는 어르신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의외의 반전도 있습니다. 용돈을 주거나 미안하다며 급 칭찬에 울먹거리던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며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입니다. 특히, 종교단체에서 국민과 시민을 상대로 하는 생떼 쓰기나 헌법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지난 2016년 3월 23일 조계종 한전부지환수위원회(공동위원장 지현ㆍ원명스님)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스님과 신도 1만여 명(주최 측, 경찰추산 3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전부지 환수 기원법회를 봉행했습니다. 조계종 환수위는 이날 법회에서 “1970년 당시 정부는 총무원을 겁박해 봉은사 토지 10만 평에 대한 허위 강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라고 주장하며 한전부지를 봉은사에 환수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법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곳곳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신도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한전부지 개발 허가? 박원순은 대권불발, 더민주는 총선필패”등의 구호가 적힌 플랜카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20160330web01.jpg박원순은 대권불발, 더민주는 총선필패. 헌법파괴 지적을 받고 있는 조계종환수위 피켓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서울시 공공 기여금은 1조 7,400억…환수위는 "현대차 매각 원천무효" 주장


2014년 당시 한전부지 경매는 국내 단일 부동산 거래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 그룹은 입찰가로 10조 5,500억을 써내 삼성전자를 제치고 해당 부지를 낙찰 받았고, 한전부지는 과거 봉은사 땅으로 조계종이 40여 년 전 정부에 매각한 10만평 가량의 부지 중 일부에 해당합니다.


이후 현대차 그룹은 한전부지에 신사옥(GBC)을 건립하면서 서울시에 공공기여금 1조 7,400여억 원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공기여금은 현대차 부지 주변 교통난 해소, 전시시설 및 공연장 투자 등에 쓰일 것이며, 탄천과 서울종합운동장 인프라 개선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조계종 한전부지환수위가 제동을 걸며, “현대차 매각은 원천무효이며 서울시는 현대차 신사옥 인ㆍ허가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60330web02.jpg서울시청 진입, 몸싸움하는 조계종 환수위 관계자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조계종의 지나친 우롱은 여기서 중단되어야 합니다.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한 떼쓰기가 아니라면 8년 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시민사회단체 공동대표를 오랫동안 하였던 조계종 총무부장, 총무원 기획실장이자 당연직으로 조계종 대변인이 서울시청 경비직원과 몸싸움까지 벌였습니다.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 기사에 자랑스럽게 몸싸움 사진까지 개별로 실어놓고 홍보까지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떼쓰기 하는지 서로 자랑하는 것 같은 황당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부디, 인격과 품위를 갖고 주장을 했으면 하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도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0160330web03.jpg바른불교재가모임과 대한불교청년회 현수막 사진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종교지도자나 조계종 같은 국민의 세금을 많이 지원받는 단체는 대중의 신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008년 불교계 전체, 특히 조계종은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며 대규모 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명분’은 헌법파괴, 종교 차별하는 이명박 정부 규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가물거리지만 정보사회에서 ‘범불교도 대회’ 키워드 검색만 하면 당시에 상세한 내용이 그대로 확인됩니다. 2008년 8월 26일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회(위원장 원학)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밝힙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우리 불교도들이 서울에 모여 오만과 독선으로 헌법을 파괴하며 종교차별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게 되었음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범불교도대회는 이 정부의 종교차별을 규탄하는 모든 불교 종단과 사찰, 단체 불자들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가 될 것입니다.’ 1994년 3월과 4월에 일어난 조계종의 소위 ‘94종단개혁’이 김영삼 정부(1993년~ 1998년) 출범 다음 해 에 일어났고, 2008년 범불교도대회는 이명박 정부(2008~2013) 첫해에 열린 대회라 특별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2008년 8월 27일 열린 ‘범불교도 대회’는 조계종을 비롯한 27개 불교종단이 모여 개최했고, 국민과 큰 약속을 했었습니다. “우리 불교인이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한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고 참회하는 장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고통과 민족의 장래를 위한 논의와 실천에 적극 나서고자 하는 결심의 마당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지혜와 힘이 필요합니다.”라며 관심과 애정을 가져달라고도 당부했습니다. 전국에서 20여만여 명(봉행위 집계)의 불자들이 대회가 열린 서울광장에 모였다고 주장했고, 이명박 정부의 ‘헌법파괴 종교차별’에 대한 규탄의 열기는 후끈했으며, 이웃종교계와 일반 시민사회단체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불자들은 이날 결의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목해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어청수 경찰청장 등 종교차별 공직자의 즉각 파면 ▶종교차별 금지 법 제도화 즉각 추진 ▶시국 관련자에 대한 국민 대화합 조치 실시 등 4개 항의 요구 사항을 주장했습니다. 불교계의 주장은 일부 받아들여졌고, 집회를 주도했던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범불교도 대회가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불교계 한 언론인 정성운 기자는 범불교도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종교차별을 사회적 이슈를 넘어 의제로 제출했다는 점이며, 정부․정치와 종교, 공공영역에서의 종교, 종교 간 갈등,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범불교대회의 성과는 국민들이 이해하고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2016년 3월 서울광장에는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구호와 생떼 쓰기 같은 막장 드라마에 버금가는 황당한 주장과 행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계종 환수위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토론회나 충분한 사전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울광장에 천막 법당을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집회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5월 연등축제 기간에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 글은 2016년 3월 3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