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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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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ble: 할 수 없게 하다. 장애를 입히다 (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32
조회
351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한 사람을 만났다. 25살 여성인 A는 얼마 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졸업식에서 학생대표로 졸업연설을 맡았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와 단둘이 미국여행을 했을 정도로 당찬 사람이다. 교육 여건이 그리 좋지 않은 당진이라는 소도시에서 살면서 서울대까지 갔으니 중고등학생 때 꽤 공부도 잘하고 똘똘한 학생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대학에선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도 올랐고, 장애인·다문화가정을 돕는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했다.


A는 장애인이다.


그는 선천적인 뇌성마비로 인해 걷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A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그에 대해 얘기하다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밝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감탄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학교생활도 잘하고, 여행도 많이 하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봉사활동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법하다. 그러나 A에겐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런 일들을 하는 게 비장애인보다는 조금 더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라고 했다.


A는 말했다.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자유롭게 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장애인들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결함이 장애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들도 갈 수 있도록 만든다면, 신체적 결함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아요.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은 그들이 불쌍하니까 도와줘야 하고, 배려해줘야 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해요. 보통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장애인들도 할 수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장애가 장애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A와 대화를 나누면서 든 생각. 나는 지금 한국사회가 신체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사회적 장애인’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여성의 사회참여와 권익이 향상됐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거나 출산 이후의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일할 능력이 있는 수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연애·결혼·출산에 이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도 포기한다는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 갈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결국 사람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단지 신체적 결함만을 장애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


201508280226_11130923219431_1.jpg사진 출처 - 국민일보


그런 한국을 두고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헬(Hell, 지옥)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다. 침체가 십 수 년 째 지속되면서, 처음엔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도 이젠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했던 희망마저,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사회에선 사치인 것만 같다.


이 글은 2015년 10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