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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 쉬고 있나요? (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27
조회
242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휴가철이 지나고 있다. 7월 말부터 8월 초중순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에 휴가를 보낸다. 학생들 방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휴가는 휴가가 아니다. 휴가철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도로는 주차장이 되기 일쑤고, 휴양지·피서지·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넘쳐나 쉼이 아닌 피로가 몰려온다. 휴가(休暇)라는 말이 무색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가장 덥고, 가장 추울 때 방학을 하는데, 차라리 그 시기에 학교에서 제공되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또는 따뜻한 온풍기 아래서 공부하게 하고, 가장 나가 놀기 좋은 봄·가을에 방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봄볕과 가을볕이 완연할 땐 외려 시험 기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혹은 자주 시험을 망쳤다.


7~8월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장 더운 때다. 게다가 비가 자주 와서 날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휴가 혹은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지 않은 시기다. 2~3주 사이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휴가를 보내다 보니,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광지마다 ‘한 철 장사’를 하느라 물가는 폭등한다. 한국의 휴가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다.


47792_25794_853.jpg사진 출처 - 당진시대


지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휴가라는 문화가 특히 직장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산업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때와 쉬는 때를 크게 구분 짓지 않는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이른 아침 시간에 일하고, 뜨거운 한낮에는 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낮잠을 잔다. 혹은 사회생활을 하든, 개인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해가 기울어지면 다시 밖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온다. 게다가 한창 모를 심을 때와 수확기 이외엔 비교적 한가하다. 농한기에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은 윷을 놀거나 장기를 둔다. 일과 쉼은 자연의 주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의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과 근로시간 단축 투쟁을 벌인 후에야, 휴가도 노동자들의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휴가문화가 조금씩 이식되기 시작했다. 월차휴가나 연차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용자와 동료들의 눈치를 볼 때가 많았다. 휴가자의 업무를 대체할 인력이 없고, 기존 근로자들이 업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근로자들이 동시에, 대신 최소한의 기간 동안만 휴가를 가는 독특한 휴가문화가 만들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가기간은 물론 휴가지역도 한정될 수밖에 없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산업화의 산물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왔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 여가 문화가 확대됐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문화는 여전히 최대한 많은 곳을 ‘찍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사진을 찍고 빨리 장소를 옮겨가는 여행 아닌 관광이다.


지난해 독일을 여행하다 어느 명소에 가게 됐다. 한적한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전망 좋은 곳에서 오래도록 친구와 대화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휴식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인을 실은 버스와 중국인들을 실은 버스가 연이어 도착하면서 뷰포인트(일명 포토존)에서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바쁘게 또 다른 곳을 향하는 모습을 봤다. 대조되는 두 장면을 한 장소에서 보면서 이제 우리에게도 노동의 가치만큼 쉼의 가치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휴가조차 스트레스가 되고, 일이 되는 사회는 너무 피곤하다.


이 글은 2015년 8월 1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