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풍자와 시‘굿’선언 (다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52
조회
310

다솜/ 미디어 활동가


요 며칠, 쏟아지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분노를 넘어서 모멸감이 느껴질 지경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역사적인 순간에 한국에 있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시간 차이를 두고 소식을 따라잡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가, 그로 인한 시차가 결코 이 분노와 모멸감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물음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는 지난 대선후보 검증 과정에서도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르지 않았던가. 최 씨 일가는 늘 그림자처럼 박근혜의 곁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는 왜 이제야 충분히 수면 위로 떠오른 걸까. 도대체 어떤 바탕이 이 사태를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왜 알 만한 사람들도 침묵을 지켰을까.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제동을 걸지 않았을까.


정치적인 혼란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저 권력의 뒤로 내 몸을 안전하게 숨기기만 하면 된다는 역사를 반복적으로 학습해온 탓일까?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위 앞에 부끄러움은 설 자리가 없는 걸까? 식민지 경험과 전쟁,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생존을 위해 눈치만 잘 살피는 기회주의자를 대거 길러낸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분노와 모멸감으로 점철된 일상에 내가 짓눌리지 않게 도와주는 건 사람들이 빚어내는 유머의 힘이다. 시국선언이 아니라 시‘굿’선언을 하자는 제안이라든가, 시위대의 승마 퍼포먼스라든가, “경찰도 함께하자”는 구호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자아내는 유머는 어처구니없는 정치판에 웃음으로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분노와 모멸감에 무력해지지 않고 오늘 하루를 버텨내면서 내일 하루 또 한 번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선물해준다.


00501629_20161106.JPG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오늘, 촛불이 다시 한 번 각 지역에서 광장을 뒤덮는 것을 본다.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린다. 감격스러움으로 눈물이 끝없이 흐른다. 이들의 움직임이야말로 이 순간 최고의 퍼포먼스다. 이들의 몸짓은 한국 정치에 낀 살을 풀어내는 살풀이이고 부정부패의 망령을 몰아내는 장엄한 씻김굿이다.


이 글은 2016년 11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