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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을 응원한다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47
조회
307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성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내가 옷을 갈아입거나 목욕하는 모습, 심지어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 모습을 누군가 몰래카메라로 촬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도 그렇고 거의 모든 남성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걸 온라인에 올린들 누가 관심이나 갖겠나’ 하는, 묘한 안도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살면서 ‘내가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십중팔구 없을 것이다. 밤늦게 술을 먹고 늦게 들어가더라도 당신의 어머니나 아내는 ‘그러다 강도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혹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할지언정 ‘밤늦게 취해서 집에 오다 뒷골목에서 나쁜 놈(혹은 년)에게 잘못 걸려 강간이라도 당하면 어쩌나’하는 불안에 떨진 않는다.


어떤 사회에서 소수자를 구분하는 건 뜻밖에 쉽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외국인 중에서 금발을 한 서양인이라면 한국을 찾은 손님으로서 환대받을 것이다. 혀를 찰지게 굴리며 ‘안녀하쎄여’라고 인사라도 하면 또 얼마나 화기애애해질 것인가. 반면 피부색이 검으면 검을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소수자란 그런 존재다.


소수자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꽤 그럴듯한 방법이 또 있다. 10년도 더 전에 홍세화 선생이 인권연대 강연에서 알려준 건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마디면 충분하다. 어떤 사람에게 “너 전라도 사람이냐”라고 물어본 다음 “너 경상도 사람이냐”라고 물어보라. 전자는 익숙한 언어습관 속에 존재하지만 후자는 매우 어색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건 유럽에서 “너 유대인이냐” 혹은 “너 집시냐”라고 묻는 것과 같은 맥락 속에 존재한다.


한국에서 여성은 소수자인가. 그렇다. 한국에서 여성은 약자인가. 틀림없다. 여성은 여대생, 여사원, 여사장, 여검사, 여성판사 등 여성을 특정 하는 호칭과 함께 등장한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몰래카메라 관련 뉴스는 거의 언제나 여성들이 피해자다. 성폭력 사건은 또 어떤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한 후배가 페이스북에 ‘자신은 언제나 하루하루 성폭력 공포를 의식하면서 살고 있다’는 글을 올린 걸 봤는데 솔직히 그 정도일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항변하는 남성들도 있을 것이다.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남성도 남자라는 이유로 피해보고 손해보는 게 많다. 맞다. 인정한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성폭력은 단순히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동성애란 그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에 슬퍼하고 가해자에 분노하는 것은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게 문제다. 거기에 무슨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131877_177446_5319.jpg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나는 시사IN 애독자다. 창간호부터 시작해 지금껏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시사IN은 박근혜 앞에서도 당당하고 삼성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진정한 언론이다. 지난주에 실린 기획기사 ‘분노한 남자들’ 기사도 꼼꼼히 읽어봤다. 매우 잘 쓴 기사다.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았고 주장만 앞세우지도 않았다. 구독중지가 줄을 잇는다는 독자들 반응을 다룬 소식을 듣고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그 기사가 어딜 봐서 구독중지할만한 기사란 말인가.


시사IN 구독 중지하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내가 가해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만약 어떤 일본 사람이 “내가 식민지배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당시 가해자들 다 죽었는데 왜 우리한테 사과하라고 그러느냐?”라고 하며 “나는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사과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건 옳은 태도일까 아닐까. 그 일본인이 “한국 사람들은 틈만 나면 일본을 헐뜯고 일본을 비하해. 저러니까 아직도 저 모양이지.”라고 말한다면 그건 칭찬받을 발언일까 싸가지 없는 발언일까.


한 가지만 첨언하고 싶다. 정기구독자 급감은 시사IN에 상당히 위협적인 사태일 것이다. 이게 효과를 발휘하면 앞으로 여성인권 옹호하는 기사도 쓰기 힘들어지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다. 대안은 있다. 많은 여성분들이 시사IN 구독자가 되어 주시길 바란다. 구독 끊는 분들보다 시사IN 기사를 응원하며 신규 구독하는 분들이 더 많다면, 세상이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은 2016년 8월 3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