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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인의 인격을 묻다 (신혜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38
조회
444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내가 여기 일일 사장님이야.”


‘사장님’은 바퀴 달린 낡은 회색빛 의자에 앉더니 몸을 젖혔다. 표정과 몸짓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올해 일흔일곱 살인 신백동 씨는 제천 중앙시장에서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한다. 주차장 맞은편 상가 차양 아래 놓인 의자가 신 씨의 야외 사무실이다.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지는 여름에도, 빙판이 어는 겨울에도 신 씨는 이곳에서 하루 11시간을 버틴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에서는 일흔을 넘은 주차관리요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제천시 공영주차장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모두 개인사업자다. 제천시는 2년마다 입찰을 통해 공영주차장 운영권을 민간 업체에 수탁하고 있다. 주차관리요원은 이 민간업체와 구두계약을 맺고 시민들에게 걷은 주차요금의 일부를 수입으로 챙긴다. 주차요금을 걷을 권리를 얻는 대신 민간 수탁업체에게 날마다 정해진 금액을 입금하는 형태다. 택시기사들이 회사에 내는 ‘사납금’과 비슷하다.


20160721web01.jpg제천시 주차관리요원인 신백동씨가 시민에게 주차요금을 걷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개인사업자인 탓에 정해진 임금은 없다. 주차요금은 10분에 300원. 회사에 보내야 하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주차요금이 덜 걷히면 그만큼 손해가 나기 때문에 주차요원들은 필사적으로 주차장을 지킨다. 평균적인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1시간에 달한다. 일요일을 뺀 주 6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1년 중 쉬는 날은 명절 연휴 당일과 그 다음날이 전부다. 주차요금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봐 점심, 저녁은 길 위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120만 원 정도를 번다. 당연히 최저시급 미만이다.


사장님은 아플 수도, 다칠 수도 없다.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으니 고용보험, 산재보험같은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에서도 소외돼 있다. 제천 중앙시장 용두천 1지구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일흔다섯 살 남영기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4차선 도로를 넘어 다닌다. 관리하는 주차구역이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 주차요금을 걷기 위해 황급히 차로를 가로질러가는 일이 다반사다. 일터가 차도 한복판인 업무의 특성상 교통사고가 나기 쉽지만, 사고가 났을 때 이들이 지급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한 푼도 없다.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처장은 제천시 공영주차장 주차관리요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하루 11시간 노동에 대해서는 “젊은 사람들도 못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노인들이 체력적인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건 소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인 일자리 중에는 30시간 이상 일하고도 20만 원을 주는 등 임금이 형편없는 경우가 흔하다고도 했다.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소득이 낮다보니 폐지를 줍거나 투잡, 쓰리잡을 뛴다”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20160721web02.jpg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노인의 지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노동을 인격으로 보는 문화’를 꼽았다.
사진 출처 - pixabay


‘일자리가 복지다.’ 한국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노인들의 삶을 나락으로 모는 기폭제다. 수탁업체 측에서 열악한 노동실태를 지적하자 “주차관리 일은 걸을 수만 있으면 할 수 있어서 노인들에게 유리한 일자리”라며 “오래 일하는 사람은 10년 넘게 이 일만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주차관리요원 중에는 “이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며 5년 이상 해왔다고 답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사회복지학자 에스핑 앤더슨은 현대 국가의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노동력 상품화’를 꼽았다. 노동력을 팔지 않고 어느 정도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면 복지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부양의무자가 없는 궁핍한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잔여적 복지모델이다. 이마저도 복지 수혜자의 근로능력을 파악해 ‘가상소득’을 집계하고, 근로능력이 있는 이들은 복지 혜택에서 제외한다. 자신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전혀 볼 수 없기에 한국 사회의 노동력 상품화 정도는 최상에 가깝다.


죽기 직전까지 뒤틀린 고용구조 속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노인들의 삶을 바꾸려면 노동력 상품화 정도를 낮추고 복지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노인의 지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노동을 인격으로 보는 문화’를 꼽았다.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노인은 사회적 유용성이 떨어진다며 평가 절하된다. 노동력을 팔아 생존하는 것이 제1원칙인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노동력을 팔 수 없게 된 이들이 어려움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반인권적인 행위다. 오늘도 차로 한복판에서 땀을 흘리며 주차요금을 걷고 있을 노인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 노인들에게는 언제쯤 인격이 허락되느냐”고.


이 글은 2016년 7월 2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