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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사회와 인권 (신혜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32
조회
363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누군가를 당신의 종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라.”


이 오래된 격언은 우리가 살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을 찌른다. 주거, 의료, 교육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빚을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두고, 남은 삶은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도록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탓에 개인은 사회의 명령에 복종하며 자유를 반납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한다. 단지 빚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나 고분고분해진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영화에서 등록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질 낮은 일터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미국 청년들의 현실을 풍자했다. 한국인들의 삶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계부채가 1200조에 육박하고, 빚쟁이 신세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 채무자가 2만 명에 이른다. 보장률이 50%에 못 미치는 의료보험체계,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내 집 마련에 30년이 넘게 걸리는 주거비 부담이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 세상에 살면서 아프지 않고, 교육받지 않아도 괜찮고, 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기 위해 빚을 졌다지만, 사실상 한국인들은 빚을 갚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지난 달 9일, 20대 국회 입성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을 만났다. 서민금융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 10년간 서민들을 빚의 굴레로 모는 ‘약탈적 금융사회’를 고발해왔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는 사회가 바로 제 의원이 말하는 약탈적 금융사회다. 복지가 필요한 계층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면서 ‘서민금융’이라고 포장하는 정부 금융정책이 대표적이다. 생활비가 없어서 이자를 못 내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대출을 해주는 건 결국 서민들 빚만 늘리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행 문턱을 낮춰 돈을 빌려주는 건 정책이 아닙니다. 돈을 안 빌려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정책이죠." 제 의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가 국회 입성 후 첫 과제로 내세운 법안은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이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여기서 채권은 ‘돈을 받아낼 권리’와 같다. 현행법상 채권은 엄연히 소멸시효가 있지만 채무자가 빚을 갚을 의사를 표현하거나 채권자가 소송을 걸면 빚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런 탓에 은행은 받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부실 채권을 대부업체에게 헐값에 팔아넘기고, 대부업체는 악독한 채권추심(빚 독촉)을 통해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내 이윤을 남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는 채무자의 인권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아 방문추심도 흔하게 이뤄진다. 아이들 앞에서 채권 추심을 당하고, 직장에 찾아온 대부업체 직원 탓에 망신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가 속출하는 이유다.


20160601web01.jpg 제윤경 의원(사진 맨 오른쪽)이 참여한 ‘주빌리은행’ 출범식.
사진 출처 - 쥬빌리은행 페이스북


주빌리 은행은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곳이다. 제 의원은 “주빌리은행은 ‘부실채권 시장의 민낯’을 국민들에게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통념에 국민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2013년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수상작인 소설 <청춘파산>은 집안 사정으로 20대부터 빚을 지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빚 독촉을 피하느라 주거지를 옮겨가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주인공의 삶이 공간의 이동과 함께 전개된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이 “21세기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고 평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이 작가의 경험담이란 점이다. 빚을 받기 위해 집에 찾아와 문신한 팔뚝을 내보이던 ‘빚쟁이’들과의 만남까지도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빚에 좇기며 살아온 작가의 20대는 한 편의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현대판 구보씨는 고시원 총무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학원 시간 강사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빚을 피해 조용히 숨을 몰아쉴 뿐이다.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에 갈수록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사회권에 대한 인식이 약한 한국사회에서 산다는 건 곧 빚을 지는 일이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이너스 인생이다.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종으로 부리려는 세력이 있는 것만 같다. 노예가 어떻게 감히 인권을 말할까. 다만 주인에게 종속돼 살아갈 뿐이다. 빚더미 사회에서 인권을 찾기는 그래서 어렵다. 이제 빚 권하는 사회에 맞서 시민권을 되찾는 운동을 할 때다. 20대 국회는 부디 한국 국민들의 잃어버린 시민권을 되찾는 데 힘이 돼 주길 바란다.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은 좋은 출발점이 될 거다.


이 글은 2016년 6월 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