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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잘 권리를 허하라! (다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55
조회
368

다솜/ 미디어 활동가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군 하나의 이미지가 있었다. 고카페인이 함유되어 한 번 마시면 다음 날 아침까지 잠들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한 우유였다. 각성제로 유명한 음료보다 몇 배 많은 카페인 함유량을 자랑한다는 그 우유는 특히 중간고사 기간의 대학생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언제부터 우리는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당연한 것, 혹은 젊은 날의 열정으로 포장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스스로의 몸을 망쳐가면서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충분히 잠 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대학생만이 아니다. 한창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는 중고등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늘 잠이 부족해 허덕이고,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편의점의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뿐인가? 오전에 지하철을 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는지. 지하철 역사 안에 하나둘 자리 잡은 카페는 그래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거나 퀭한 눈으로 커피잔을 붙잡고 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스스로를 소진시켜가며 살고 있는 걸까?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해 얻은 대가가 다시 잠도 자지 못하며 끝없이 일해야 하는 삶이라니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image_readtop_2011_265377_1303798833413540.jpg사진 출처 - 매일경제


저녁, 다시 지하철에 오른다. 공교롭게도 내 양옆의 사람이 모두 조는 바람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들 삶의 무게가 내 몸에 전해져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잠깐 동안 누리는 그들의 ‘휴식’을 방해할 수 없다는 마음에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혹여나 내 몸짓이 그들의 잠을 방해할까 염려했다. 그러면서 더더욱 이 칼럼을 써야 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 언젠가 짜증 섞인 일상이 주는 피로함과 술 냄새 및 고기 냄새로 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 붐비는 대중교통 안에서 앉을 자리 하나 얻지 못해 그 비좁은 공간을 또 서서 가야 하는 걸 보며 '이런 게 삶이라면 이건 곧 형벌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고문 중에는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의 학생, 노동자들은 잠 안 재우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고문을 중단하라. 그리고 잠 잘 권리를 허하라!


이 글은 2016년 4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