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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한일정부 위안부 합의, 최근 유엔 결정 (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51
조회
318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2월 25일, ‘귀향’이라는 영화를 단체관람하고 조정래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개봉한지 하루밖에 안 지난 상황이어서 지금처럼 흥행 할지는 몰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간절히 바랬다. 영화를 아직 못 보시거나 조만간 볼 계획이실 분도 계실 테니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하고, 당일 기억에 남는 점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히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무엇이 이 분(피해자 할머님)들을 그 지옥에 보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라는 이야기이다. 감독은 “누가”가 아닌 “무엇”을 강조하였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방안에 합의하고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피해자분들이나 피해자분들을 지원했던 단체들과의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말 그대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영화 ‘귀향’에서도 나오지만 1991년 최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서 세상에 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국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분들과 그 분들을 지원하는 많은 단체와 국민들이 매주 수요일 집회를 하며 기나긴 투쟁을 하였을 때도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다.


2015년 12월 28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한일 정부의 합의를 축하하며”, “협상이 타결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발표하였고, 2016년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박근혜 대통령이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국내 주요 언론들은 이를 유엔의 결정으로 몰아가며 위안부 합의에 한껏 힘을 실어주었다.


민변과 정대협은 반기문 총장의 발표에 즉각 반발하며 2016년 1월말에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유엔의 각종 인권기구(조약감시기구, 인권특별보고관)에 위안부 합의가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한지 유엔사무총장의 평가가 맞는지 합당한지 평가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2016년 2월에 개최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본정부 심의회의에 직접 참가단을 파견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유엔의 공식입장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심의회의시에 “위안부는 조작된 것이며, 성노예라는 것도 잘못된 개념이다”라고 하며 12월 28일, 양국 간 합의내용인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인정’을 완전히 뒤집는 주장을 하였다.


10_20_22__569ee0d6520ff[S614,410-].jpg사진 출처 - 씨네21


심의 이후 유엔의 여러 인권담당기구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발표하였다. 2016년 3월 7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위 합의가 피해생존자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피해자중심의 해결원칙을 지키지 않은 점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일본정부는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상과 만족적인 조치, 공식적 사과 및 재활서비스 등을 제공하라”고 권고하였다. 2016년 3월 10일,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일본군 ‘위안부’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성노예제도 아래에서 생존한 여성들”이라고 못 박으면서 “이번 합의에 피해자로부터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매우 중대하다”라고 하며 합의에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2016년 3월 11일, 유엔의 전통적인 인권기구인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의 인권전문가 그룹도 공동보도자료를 발표하며 “한일 정부의 합의는 생존자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며 완전한 책임을 인정한 명확한 공식사과와 충분한 배상만이 진실, 정의, 배상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고 분명히 했다. 마지막으로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는 지난 3월 21일,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로 인한 인권침해 행위 조사나 가해자 형사책임 추궁 등에 관해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유엔의 모든 인권기구는 지난 12월 28일, 한일정부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피해생존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대책 이행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정부는 12월 28일,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실무논의를 진행하며 소위 ‘피해자 지원 재단 설치 및 운영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고 한다. 같은 시각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정대협 관계자들은 합의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이역만리의 미국에서 힘든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다.


70년 전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그 분들은 지옥의 삶에 내몰렸다. 1991년 피해자분들이 본인의 입으로 그 지옥을 이야기하기 전까지 국가와 사회, 공동체는 침묵하였다. 그리고 양국의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를 하였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고령의 피해자분들은 여전히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엔에서, 많은 국가를 돌며 본인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증언하고 계신다. 무엇이 이토록 긴 시간동안 이 분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 하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을 자기 멋대로 활용하는 국가의 모습을 70년 넘게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2016년 3월 2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