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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인권이 위협받고 있다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8:14
조회
40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충청남도 의회는 2012년 5월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당시 도의원 전원의 공동발의로 제정 공포했다. 충청남도는 2014년 도민인권선언문을 선포하였으며 2015년에는 인권조례의 구체성을 강화한 조례 개정에 이어 2016년 12월에 충남인권센터를 개소했다.


15개 시, 군 모두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하면서 충청남도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자치단체 차원의 인권제도화를 진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2월, 충남기독교연합회 소속 목사 10여 명은 안희정 지사와 면담을 통해 인권조례와 도민인권선언문의 성적지향 차별금지를 문제 삼으며 공식적으로 인권조례 폐기를 요청했다.


이후 충남의 기독교계와 일부단체는 충남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실제 부여, 공주, 서천에서는 폐지청구가 접수되고 서산, 당진, 아산 등에서는 폐지 청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지역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충북교육청은 지역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충북교육공동체권리선언>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6년 4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타운홀 미팅 현장에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난입해서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IE002159177_STD.jpg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015년 대전에서는 <성평등기본조례>가 제정되었는데 지역 기독교계가 ‘성 소수자 보호 및 지원’에 대한 조항을 문제 삼으며 강력하게 반발하자 대전시 의회는 제정 한 달 만에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조례명칭도 양성평등조례로 바꾸고 말았다.


박병철 시의원이 의원 발의한 <대전학생인권조례>는 2016년 4월 조례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반대세력들의 물리력 행사로 시작 10여 분 만에 취소되었으며 올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대전시 의회 교육상임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결조차 하지 않고 두 차례 연속 유보하며 사실상 폐기처분 되고 말았다.


이렇게 충청지역만 살펴보아도 최근 2~3년간 지자체 차원에서 새롭게 추진하거나 이미 시행되고 있던 많은 인권정책과 조례들이 무산되거나 위협받는 중인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충청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전국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동성애 반대’를 이유로 ‘인권’이란 문구만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움직임은 상당히 조직적이며 교인들을 앞세운 물리적 반대 행동 역시 갈수록 위력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에 반해 지역의 시민사회 특히 인권 분야의 시민사회 역량은 허약해서 새로운 인권조례 제정은 번번이 막히고 멀쩡한 조례와 인권 제도마저 폐기하려는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이성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반인권세력들의 준동을 막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지역의 정치인들은 지방자치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 때문인지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계속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지역사무소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지역 인권조례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표준조례를 만들었고 이를 지역에서 참고하여 인권조례를 제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인권조례와 인권 제도를 공격하며 인권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차원의 대책과 강력한 항의, 비판의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지난 6월 인권조례 폐지움직임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이른 충청남도 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조례 폐지의 적합성에 대해 의견을 문의하고서야 ‘성소수자 차별금지 규정 때문에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발표한 것이 그나마 지역 인권조례 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거의 유일하게 드러난 움직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 또한 기능적인 한계이기는 하겠지만, 인권교육과 진정, 상담 외에 주요 지역 인권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거나 반인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독교계를 앞세운 반인권세력들이 펼치는 지역 인권제도화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해야 할 지역 시민사회의 힘은 여전히 미약하고, 지역 정치권과 국가인권위원회도 별다른 대책이나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적소수자는 물론이고 학생,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여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는 지역 차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데서 일련의 반인권적 사태가 가지는 심각성이 크다고 하겠다.


유엔 차원에서 ‘도시인권’이란 개념이 만들어 진 후 2005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라는 도시가 유엔이 선정하는 '인권도시'로 선언되었고 이후 10개가 넘는 도시가 추가로 인권도시로 선정되었다. 2015년 미국에서, 올해는 독일이 동성 간의 혼인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2017년 대한민국의 지역 곳곳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도 아닌 단순히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자는 문구 때문에 법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던 법도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곳곳에 쌓여있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혹은 시민사회 차원에서 대안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지역 인권 제도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파도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데 이를 헤쳐 나갈 배에 제대로 된 선장도, 조타수도, 항해사도 없는 것이 2017년 현재 지역 인권이 처한 상황이다.


이 글은 2017년 7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