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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역 학생들도 인권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35
조회
399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인권이 ‘지역’과 만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인권의 보편성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 내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지역에 있건 차별 없이 헌법적 권리와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상이 청소년이라 해도 보장받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2016년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인권보장은 자동차로 불과 1~2시간 거리에 있는 서울, 경기, 충북, 전북, 광주지역의 그것과는 현격히 차이 나게 낮은 수준을 보인다.


30분~1시간이나 이른 등교 시간, 자율이 아닌 강제 야간학습,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행해지는 체벌, 수준별 이동수업이라고 포장되는 차별 수업, 매 학기 언제나 치러지는 일제고사 시험, 초등학교까지만 지원되는 무상급식 등 대전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들의 삶은 적어도 인권적 기준에서는 다른 지역과 비교를 해도,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도 문제투성이다.


대전지역이 이렇게 청소년 인권에 대한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나열되는 청소년 인권침해 지역이 된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첫 번째 지적되는 문제점은 학생 인권에 무관심한 대전의 교육행정이다.


대전은 대구와 울산, 경북과 함께 교육감 직선제 이후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광역도시이다. 대전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부산, 경남, 인천 등의 지역은 2014년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 첫 진보교육감을 배출했지만, 대전은 진보교육감을 자처하는 후보가 두 명이나 출마하는 바람에 보수적인 성향의 설동호(前 한밭대 총장) 씨가 비교적 낮은 득표율인 31.42%를 득표하고도 무난하게 당선됐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당선 여부를 떠나 인권 개념 자체가 가진 진보적인 성격을 고려했을 때 보수성향 교육감의 연이은 당선은 매우 아쉽고 지역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책임성도 느껴지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보수적 성향의 교육감이 연이어 펼치는 지역 교육행정은 학생 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100% 수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2011년 무상급식 도입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 무상급식을 도입했던 다른 시도 교육청과 달리 당시 김신호 교육감은 끝까지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마지못해 초등학교 일부 학년에 대한 무상급식을 전국에서 맨 나중에 도입했다.


이 밖에도 전교조 등에서 성적을 통한 학생들의 줄 세우기와 무한 경쟁을 유발하고 불필요한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부추길 우려를 들어 일관되게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일제고사는 매 학기 치러졌지만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 규정에 의해 한 학기에 한 차례 이상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학생 대상의 인권교육은 접하기 힘든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의원입법으로 제정하려고 했던 대전학생인권조례는 지난 4월 25일 공청회에서 현 교육감 지지 세력과 개신교, 보수단체 세력들이 물리력으로 행사 자체를 저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교육현장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혁신학교 또한 대전에서는 거의 무풍지대이다. 경기도의 경우 관내 2,250개의 초, 중, 고등학교 중에서 혁신학교는 2015년 3월 현재 356개로 15.8%에 이른다. 하지만 대전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민선 자치 이후 이제껏 대전시의 교육행정에 학생 인권을 기준으로 한 변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전지역의 학생 인권침해가 심각해진 두 번째 원인은 시민사회와 학부모의 무관심을 지적할 수 있겠다.


대전은 올해 박병철 시의원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가 있기 전까지는 교육청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없었던 지역이다. 서울과 전북, 충북, 경남 등의 지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시민들이 제정운동을 하고 시민발의 형태를 취하는 지역 교육 개혁 운동의 한 형태로 발전했지만, 대전은 그러한 시도가 없었다.


참교육 운동을 앞장서 펼쳐왔던 전교조의 활동이 유독 대전에서는 조직력이나 활동력에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 외에도 대전지역 내에서 지방권력 감시, 환경, 노동, 통일운동 등이 나름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육과 학생 인권에 대한 지역 시민사회의 이러한 무기력은 아쉽기만 할 뿐이다.


38478_55723_5144.jpg사진 출처 - 굿모닝충청


학생 인권에 관심이 없고 쟁점이 되지 않는 지역 분위기와 맞물려서 대전지역의 학부모 성향 역시 자녀들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매 학기 시행 여부를 놓고 교육시민단체와 힘겨루기를 하는 일제고사 시행도 대전지역 대부분의 학부모는 문제 제기는 고사하고 시험일정이 발표되면 시험 준비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형편이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비유가 될 수 있겠지만, 보수적인 교육행정 때문에 학부모의 성향이 그렇게 굳어 버린 것인지, 원래부터 대전지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대전지역 학부모 분위기에서 학생 인권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무리라는 것은 대체로 지역사회의 일치된 의견일 것이다.


문제는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데서 대전지역 학생 인권침해 문제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대전지역의 학생 인권침해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유명한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유럽횡단 열차를 배경으로 열차 안이라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용의자로 의심받는 12명의 승객을 소재로 다룬 추리소설의 걸작에서 왜 대전의 학생 인권이 뜬금없이 생각났을까?


적어도 학생 인권과 관련해서는 다른 지역과 소통하지 않은 밀실과 같다는 점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주 무대인 기차 안이 주는 막연한 답답한 분위기와 대전의 학생 인권 관련 분위기는 많이 맞닿아 있다.


또 하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서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누구였던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대전 지역의 학생 인권침해가 심각해진 원인과 책임을 묻는다면 이는 아마도 대전지역의 학생을 둘러싼 모두가 원인 제공자고 책임주체가 아닐까?


이 글은 2016년 6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