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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살리기 정책은 있는가?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48
조회
365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지방이 위기다’란 말은 마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관행적으로 하는 것 같고 듣는 사람들도 그다지 심각성을 깊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허울뿐인 지방자치, 그로 인한 지방재정의 빈약함, 돈이든 사람이든 뭐든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서울공화국의 위력 앞에 지방의 위기는 대한민국 그 어떤 부문의 위기보다 가속화되어왔다.


하지만 이제 지방은 정말 현실적인 생존의 위기 앞에 섰다. 그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인구감소’이다. 언론에서 많이 나왔던 것처럼 대한민국은 2016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면서 인구절벽 상태에 진입하는데, OECD가입 국가 중 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인 '초저출산'을 경험한 11개국 중 한국만 15년째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우울한 사실을 뒷받침하듯이 통계청은 지난 1월~7월 사이 혼인과 출산이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인구절벽은 대한민국 전체의 위기이지만 그 피해의 최전선에는 작은 군소단위 지방자치단체가 위태롭게 서 있는 형국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개발한 ‘지방소멸 위험지수’라는 것을 보면 작은 규모 지방자치단체의 위기가 좀 더 명확해진다. 지방소멸 위험지수는 가임기 여성(20~39세)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인데 산출 값이 1.0 이하이면 ‘인구쇠퇴 주의단계’이며, 0.5 이하이면 ‘인구소멸 위험단계’ 진입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임기 여성 인구수가 고령 인구수 절반에 못 미치면 출산율이 늘어나도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기 때문에 인구가 산술적으로 ‘0’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지수를 통해 17개 광역 시·도를 살펴보면 지난 7월을 기준으로 지방소멸 위험지수가 1.0 이상인 곳은 서울과 인천 등 6곳으로 대도시도 인구감소의 위기에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충남의 기초자치단체를 조사한 자료는 충격이었다. 충남 15개 시군 가운데 청양(0.224), 서천(0.238), 부여(0.261), 금산(0.310), 예산(0.311), 태안(0.314), 보령(0.427), 논산(0.430), 공주(0.454), 홍성(0.479) 등 9개 시군의 지방소멸지수가 0.5 이하를 기록해 이 도시들은 30년 이내에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l_2016091301001855600134841.jpg사진 출처 - 경향신문


사정이 이러한데도 그동안 기혼자들의 출산독려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에는 돈만 쏟아 붓고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하는 졸속 행정이 이어졌다. 복지선진국들처럼 기혼자들의 양육에 대한 지원은 물론 안정된 일자리를 늘리고, 신혼부부들이 감당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고, 보육 관련 인프라를 늘리는 보편적인 복지정책을 통해 미혼남녀들도 안심하고 결혼과 출산에 이르게 하는 동기부여가 거의 되지 못한 것이다.


눈앞에 다가온 ‘도시소멸’의 위기에 놓인 지방자치단체들의 출산장려정책도 중앙정부의 그것과 매일반이었다. 출산축하금과 출산장려금이 대부분인 지방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은 전남 해남의 경우처럼 아기를 낳아 돈만 받고 대도시로 다시 이사가 버리는 이른바 ‘먹튀 출산’의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안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에 기반을 둔 환경구축에 있는 것이라면 지방에서도 결혼과 출산, 교육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안점이 맞춰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의 열악함을 이유로 이러한 복지환경을 조성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설령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수당과 공공산후조리원 같은 독자적인 복지정책을 하려고 해도 중앙정부에서 막는 이해하지 못할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방재정의 열악함과 중앙정부의 방해 외에도 지방정부 자체 사업도 따져보면 그것이 해당 시군을 위한 것인지 고개를 젓게 만드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충청남도는 2018년 초 개원을 목표로 서울지역 대학에 입학한 충남 도민 자녀들의 숙소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 구로구에 ‘충남학사’를 건립할 예정이다. 서울로 유학을 가지만 다시 충남으로는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학생들을 위해 부지매입과 건물신축에만 200억 원이 넘는 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방 살리기의 본질과는 관련 없는 사업에 대해 지방의회도 지방 언론도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역할을 자임한다는 것이다. 인구절벽으로 도내 군소 도시가 수십 년 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기사와 젊은 층의 인구이탈 가속화를 뒷받침할 수도 있는 재경기숙사 건립 환영기사가 같은 신문사에서 버젓이 다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언론에서 지속적인 반대 여론을 펼쳐서 역대 도지사가 추진할 때 마다 막아왔던 경남에서마저 현 홍준표 도지사가 기어이 2018년 재경 경남학사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안희정 지사도 홍준표 지사도 자신들은 도지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현실은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교육이민이 지방 인구감소의 주요 요인인데도 서울을 도와주는 정책을 통해 지역민을 위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침몰의 위기는 코앞에 닥쳤는데 당장 자기가 탄 부서진 배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서울만을 바라보는 지방처럼 보이지 않는 육지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지방위기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 글은 2016년 10월 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