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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호 대전교육감님께 몇 말씀 드립니다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7:41
조회
336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설동호 대전교육감님, 덥다는 표현이 무색한 너무나 뜨거운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대전의 한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며 평소 설 교육감님의 대전교육행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많아서 이런 지면을 빌렸습니다.


우선 지난 4월 25일 박병철 시의원이 주최한 대전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는 일부 단체와 종교인들의 물리적인 방해로 인해 시작도 못 해보고 무산된 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날 저도 공청회를 직접 참관했는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분들이 고함을 치면서 하는 말들은 계속해서 듣고 있기가 괴로운 것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인권이 왜 필요해?” “외국에는 이런 법 자체가 없어!”


누구에게나 모든 인권사항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인권의 보편성은 굳이 유엔아동인권협약을 언급하지 않아도 아동과 청소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이제 주장할 필요가 없는 상식입니다.


체벌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머리카락의 길이, 복장 상태를 가지고 학생들을 단속해야 할 일이 없는 인권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법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설 교육감님도 이런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1,000명이 넘는 설 교육감님의 지지조직인 '동호사랑'이라는 모임도 그날 공청회에 참가해서 조직적으로 반대한 사실이 있어서 설 교육감님도 설마 그날 외친 고함의 내용과 같이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대전의 한 초등학교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에서 1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기쁜 일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 내용은 안타깝게도 학부모가 올린 자녀들의 부실급식 사진이었습니다. 그런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된 내막을 알아보니 작년부터 학부모들이 그 초등학교의 급식문제에 대해 학교장, 서부교육지원청, 시 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어느 곳도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학부모가 그렇게라도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이후 뒤늦게 학부모, 시민단체, 교육청이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조사한 내용의 결과는 실제 충격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영양 교사와 조리사 간의 갈등은 몇 년째 심각한 수준이었고, 이로 인한 급식실 내 위생 수준은 엉망이었습니다. 조리원들은 부인하였지만, 다수의 학생은 배식을 받는 과정에서 조리원에게 욕설과 “그만 처먹어”와 같은 인권침해 발언을 수시로 들었다고 합니다.


취임 이후 몇몇 학교 급식 현장에서 교육감님이 직접 학생들과 점심을 같이 하는 모습과 함께 급식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교육감님의 행보가 말뿐인 전시행정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게합니다.


1년 전 대전지역 고교생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교육청에서 열린 ‘대전교육 공감토크’라는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꺼낸 얘기 중에는 놀랍게도 “배가 고프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 급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등교 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프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2014년 지방선거 이후 경기도 교육청에서 시작된 ‘9시 등교’는 인근의 충남북교육청과 세종시를 비롯해 서울, 경기, 전북 등 전국 대부분의 교육청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 교육감님은 학교장의 권한이라며 사실상 9시 등교 정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침밥은 학교에 가기 바빠서 집에서 먹지 못하고, 학교에서 먹는 점심은 불안한 급식환경에 노출된 것이 대전지역 학생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20160203174255.jpg설동호 대전시교육감
사진 출처 - 아시아뉴스통신


설 교육감님은 지난 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 대전지부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뜻을 밝힌 바 있었지만, 막상 조례제정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자 “현재로선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교권의 침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진부한 논리를 내세워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대전지역 학생인권의 향상을 위해서 다른 방안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저도 굳이 학생인권조례 제정만을 고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전하게 먹을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는 학생들과 근무 이후 인권교육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급식종사자의 현실, 그로 인해 험한 욕설을 들으며 급식을 먹어야 하는 학생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노동환경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학생 대상의 노동인권 교육은 다른 시도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대전지역은 좀처럼 그런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대전지역의 고등학생들은 그런 교육 없이도 충분히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왜 대전에서는 학생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시행하지 않는지도 궁금합니다.


지난 3월 지역 언론에는 설 교육감님이 대전에서 1박 2일간 열린 한 모임에서 축사를 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전국에서 모인 40여 명의 참석자들은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이란 단체를 결성하기로 하고 출범과 함께 당면 현안 대응 과제로 ▲ 대전학생인권조례 저지 ▲ 충북교육공동체헌장 제정 저지를 위한 단체 행동 돌입 ▲ 전교조의 세력화로 망가진 교육 정상화 등을 결의했다고 합니다.


지역의 학생인권 관련 의제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행보를 보이셨던 설 교육감님께서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단체의 워크숍행사에까지 찾아가서 그것도 학생인권과 전교조를 반대하는 활동을 하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축사했다는 사실에, 대전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자존심까지 상하는 것은 저만의 감상적인 느낌일까요?


축사까지 가셨던 단체에 대한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학생들의 인권에 관심을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설 교육감님!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인권’이란 것은 그렇게 성가시거나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제가 궁금했던 문제도 대전시 교육청의 행정이 인권을 기준으로 제대로만 이뤄졌다면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성가실 일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 그 무섭다(?)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도 우려와는 달리 교사가 연일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학생들 대부분이 장발족에 진한 화장을 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학내 종교의 자유를 준다고 갑자기 이슬람으로 개종하지도 않고 성적지향과 미혼모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성애자인 학생이 동성애자가 되거나 갑자기 아이를 업고 학교에 나타나는 미혼모 학생이 많아지는 경우도 없다고 합니다.


2년 남짓 남은 설 교육감님의 임기 후반기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많아져서 인권에 기반을 둔 대전시 교육행정이 실현되길 기대합니다.


이 글은 2016년 8월 1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