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담배는 나가서 피워요!” -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44
조회
400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우리 동네에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는 집이 있다. 우리 작목반원이기도 한 용이 형(가명)은 몇 번에 걸쳐 이장직을 수행해 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하루는 개를 잡았다며 단고기를 먹으러 오라기에 점심시간에 맞춰 달려갔다. 이미 동네 아저씨들 몇 분이 오셔서 드시고 있었고, 한쪽에는 젊은 농군들의 상이 따로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들과 우리 젊은 농군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와 형수는 내내 고기를 발려내고 밥과 국을 나르고 ‘국이 식었다’ ‘두릅 좀 더 가져와라’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의 주문에 비위를 맞춰야 했다. 두 분은 우리의 식사가 끝나 상을 물리고 커피를 한 잔씩 돌리고 나서야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식은 단고기에 점심을 드실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 가끔은 ‘내가 지금 2007년도에 살고 있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일이 생긴다. 세월이 뒤로 가는 듯한 느낌, 불합리한 관습과 관행 등 나의 앞선(?)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있다.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선대로부터 다듬어져 온 나름대로의 질서와 법칙이 시골을 유지하고 있는 힘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시골 아낙네들의 삶을 보면 아직도 변함없이 억눌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이들의 보육은 물론 두 번의 새참과 세끼의 식사, 농사일까지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특히나 노동도 노동이지만 여성으로의 위상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소위 여자는 잘 길들여져야 된다는 남성들의 사고방식은 농촌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차별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여성의 지위는 마을단위에서도 나타난다. 마을마다 부녀회가 있는데 역할은 마을잔치나 기타 마을 부역이 있을 때 식사준비가 그것이다. 남자들은 외부 손님들과 술을 마시며 접대하고 부녀회는 음식준비며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한다. 그래서 잔치 때 외부 손님들 부르지 말고 함께 준비하고 함께 놀고 즐기는 마을 잔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070516web01.jpg
"여성노동자의 삶과 희망"을 주제로 한 사진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트렉터를 모는 50대 농촌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 출처 - 일다


 

요즘 우리 동네 인근 5개리 마을이 묶여 농림부로부터 사업을 하나 따 냈다. ‘농촌마을종합개발계획사업’ 5개년 사업인데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5개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일 회의다. 마을마다 의견을 모으고 5개리 대표들이 모여서 안을 만들고 이제 시작이니 5년간은 이 사업으로 바쁘게 생겼다. 그런데 추진위원회에 여성추진위원은 없는 거다. 전체 회의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여성과 관련한 사업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농촌공사 직원은 부녀회의 역할이 크고 여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마을의 대표들은 별 관심이 없다. 이제야 여성 추진위원을 두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몇 년 전부터 공부방을 하면서 정부 지원사업을 들척거리며 보는데 ‘여성농업인센터’라는 사업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 집을 비롯하여 방과 후 공부방, 그리고 여성농업인들을 위한 상담과 강좌 등 잘 운영되기만 한다면 여성농업인들에게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사업이다. 가사일과 육아, 농사일까지 숨 돌릴 틈 없는 시골 아낙네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리라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 ‘농촌마을종합개발계획사업’에 종합복지센터를 짓는데 한 층을 여성농업인센터로 만들려고 안도 올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농촌 여성들 스스로의 자각일 것이다. 가정에서는 무시당하고 마을에서는 소외되는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자각, 그리고 실천. 그렇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아직도 변하지 않는 가부장적 농촌사회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용이 형네에서는 아직도 거실과 방에서 손주들과 아내, 며느리가 있든 없든 아버님의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용이 형 아버님은 그것이 가장으로서의 권위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당신! 아이들도 있는데 앞으로 담배는 나가서 피워요!!!” 아버님을 꾸짖는 아주머니의 당찬 목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