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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기쁜 소식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팀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30
조회
387

우와 기쁜 소식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 안국동 5거리 육교를 추억하며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팀장



국회가 아무 일도 안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어쩔 수 없이라도(표를 의식해서라도) 좋은 일을 하나 봅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냉정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뜻으로 좋은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온 민주주의의 성과라고 ‘온정한’ 평가를 하는 게 맞겠지요. (좋은 법을 많이 만들어 사회통합을 제고하는 것이 ‘인간해방’이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최근 들은 소식 중에 ‘북-미 대화의 훈풍’과 함께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드디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것이죠.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시작이 반이겠죠. 참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관련 단체들이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된다 해도 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고통과 차별, 편견의 벽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법 시행과 함께 더 많은 분야에서, 더 세심하게 싸우고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최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가 제기한 ‘시각장애인들의 지폐 식별에 있어서의 고통’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20여만 명의 시각장애인들은 생활의 기초가 되는 돈 문제로(지폐 식별이 잘 안 되서) 고통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싸우고 개선해 나가야할 일들이 첩첩산중처럼 쌓여있는 것이 우리 장애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암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장애를 이유로 한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행정절차, 서비스제공 및 참정권 행사, 가정·복지시설 및 건강권 등 여러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직·간접 차별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그 조직 및 업무, 권리구제 등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용토록 하였습니다.

이 기쁜 소식 와중에 그 예전, 안국동 5거리에 있었던 육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안국동 5거리(광화문-대학로-종각-풍문여고-인사동 방향)에는 육교가 있었거든요. 참여연대 건물이 있는 안국빌딩 앞길과 종로경찰서 앞길을 잇는 육교였지요.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앞에는 장애인들이 다닐 수 없는 육교가 있다?

안국동에서 인사동으로, 인사동에서 안국동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육교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함이 많았습니다. 이 육교가 아니면 안국역 지하도 외에는 건널 방법이 없기도 했고요. 육교에서 광화문 쪽으로는 횡단보도는커녕 육교도 없었던 ‘비인간적’인 시절이었지요. 이 문제는 인권 영화 <여섯 개의 시선>에도 잠깐 나오기도 합니다.(광화문 대로를 휠체어로 건너는 장애인 장면)

지금은 없어진 이 육교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육교 바로 앞의 안국빌딩 구관(舊館)에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과 관련한 중요한 사무를 처리하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있었음에도 장애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barrier)’인 육교가 10년도 더 넘게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당국은 육교를 없앨 고민은 못할망정 ‘예술’을 위한다는 이유로 육교에 호피 모양의 장식품을 두르는 데 큰돈을 쓰기도 했었죠.(‘호피 퍼포먼스’ 예술 그 자체는 참 좋았던 기억입니다.) 그때 육교 앞에서 차마 건너갈 엄두를 못 내고 돌아서야 했던 장애인들의 절망을 생각한다면 지금도 가슴이 저밉니다.

그 육교는 한 출판사의 청원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2001년께 철거됐습니다. 안국빌딩 구관에 입주해 있던 <열린지평>은 장애인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곳으로, ‘비장애인들의 보행권 차원에서도,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 차원에서도 육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고, 결국 이를 행정당국이 받아들여 육교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너무 쉽고도 당연한 일을 왜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내지 못했을까... 그런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앞에 장애인들은 다닐 수 없는 육교가 있다?’ 여기에 대한 정당하고도 자연스러운 의문을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또는 의문을 가졌다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라는 것은 이처럼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많은 이들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겠는가... 동시대인의 고통과 절망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애정,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회변화의 에너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과 애정이 사회의 개인적·집단적 희망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안국동 5거리 육교와 같은 ‘장벽’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일은 어쩌면 이런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기뻐합니다. 앞으로 저도 장애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더 많이 싸우고, 개선해나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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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없애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계간 <열린지평>2001년 겨울호 표지입니다. 육교가 없어진 곳에 설치된 횡단보도를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기쁘게 건너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 출처 -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