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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大統領)은 NO! 호민리(護民理) YES!” -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25
조회
451


“대통령(大統領)은 NO! 호민리(護民理) YES!”
- 권위적인 ‘대통령’은 가고 ‘민중의 친구’만 남아라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올해는 대통령을 뽑는 해입니다. 국민들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고 있을까요. 대다수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은 언제쯤 가능할까요?(이미 존경하는 대통령이 있는 분들께는 죄송) 잊고 지내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 제목처럼 ‘아, 우리 국민에게도 참 좋은 대통령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문득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말은 △굉장히 권위적인 표현이고, △군사용어(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군대의 우두머리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이었다)였다는 사실, △또 일제의 용어(일본에선 통령이라는 용어가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음)로써 외세에 강점(청나라와 일본)된 치욕의 역사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문제 제기 등이 상기되면서 이참에 용어도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용어부터 권위적인 ‘대통령’

예전 사회주의권 국가에서는 지도자를 비서(秘書)나 서기(書記)로 불렀습니다. 그 호칭은 ‘인민의 심부름꾼’ ‘인민을 지키는 호민관’이라는 뜻의 ‘민중적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베트남 사회주의의 ‘호 아저씨(호지명)’는 그런 분에 가까웠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호칭도, 옛날 로마시대 민중의 보호자였던 호민관처럼 ‘호민리(護民理)’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요? 권력을 민중의 것으로, 체제를 더 나은 민주주의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민중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상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여지없이 옥살이 감이었던 그 때에 비해 지금은 ‘대통령이 동네 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우리는 좋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국민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고, ‘탈권위’를 내세운 현 대통령으로 인한 수혜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박정희가 그립다는 분들은, 1월 23일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면서 제발 ‘박정희가 제일 낫다’라는 말만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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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명(호치민) 주석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로인해 억울하게 죽었습니까. 그에 비하면 여러 문제점에 대한 정당한 비판 외에도 그 수없이 많은 모욕과 비난까지의 자유를 허용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국민에겐 정말 좋은 대통령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분단체제 하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 60년이 넘는 분단으로 통일의 꿈마저도 가물가물하다는 우리 국민들, 희망을 이야기할 기력도 없고 살아가기도 벅차기만 하다는 우리 국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이, 인간다운 삶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우리 국민은 이 꿈을 실현시켜줄 그러한 대통령을 간절히 원합니다.

‘밥은 먹고 잠은 자고 살자!’ 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소박한 말입니까.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여전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빈민·서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결식아동, 비정규노동자, 집 없는 서민, 과중 채무자, 신용 불량자, 노숙자들을 합치면 국민의 절반이 넘고, (절대)빈곤층이 천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네 서민들은 부자의 삶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제때에 제대로 밥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주거비나 이사 걱정 없이 편하게 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삶의 질’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삶’이 더 중요합니다.
국민의 삶이 어떤 것보다 우선

바라건대, 우리나라 ‘호민리’께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가져 주십시오. 그 애정을 바탕으로 고단한 국민의 삶에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현 정부 들어서 권력층의 부패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지난 김대중 정부부터 복지를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복지국가는 여전히 멀게만 보입니다. 1940년대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천국을 선포했던 영국이나 서유럽은 복지가 너무 잘 돼 ‘복지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제발 우리나라도 ‘복지병’에 한 번 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이 빈곤의 나락에서 벗어나 ‘제대로 먹고는 살고, 잘 자고는 살게 되면’ 생산이 늘고 소비가 늘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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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천국으로 일컫는 스웨덴. 사진은 스웨덴 국회와 궁궐이 모여있는 구시가지.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밥 걱정, 집 걱정, 의료비 걱정, 교육비 걱정까지 우리네 서민들의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제안한 ‘무상의료·무상교육’은 정녕 불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서유럽 국가의 대학들은 아예 등록금이 없거나 아주 싸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유학생, 여행객들에게도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는데, 복지국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우리나라의 무상의료·무상교육도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 이를 위해 불철주야 함께 할 대통령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돈을 낸 만큼만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는 사회’, 돈을 낸 만큼만 교육받는 것 아니라 ‘공부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는 사회’가 언제쯤 올까요.

우리 국민에게 또 하나 근심거리가 있다면 한반도 분단입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감상적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평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경제문제, 부동산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문제입니다. 전쟁이 나면 순식간에 수백만 명이 죽는다는 한반도. 2006년 북-미 대결구도로 촉발된 북핵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미국에서는 계속 선제 공격론이 흘러나오고(‘페리 프로세스’의 그 페리마저도 폭력론을 주창하다니!), 일본의 군국주의화 및 주변사태 개입 의지도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마저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믿을 것은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뿐입니다.

무력과 충돌은 절대적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WAR 게임’이고 군산복합체와 공화당의 이윤이 극에 달할지 몰라도, 한반도에는 수백만 명의 죽음이고 민족의 파멸입니다. 평화를 위해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대통령, 긴장과 대결의 근본적인 원인인 분단 체제를 해소하고 화해와 통일로 가는 길에 묵직하게 앞장서는 대통령이 우리 국민에겐 필요합니다. 혹자는 문제 많은 북한이라고 욕할지라도, 꾸준히 북한과 대화하고 지원하고 협의해서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우리 국민은 ‘잘 먹고 잘 자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를 바랍니다. 누구는 땀 흘려 일해도 여전히 가난하고 누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부자가 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월급쟁이보다 세금을 덜 낼 수가 있을까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보다 특권이나 연줄이 있는 사람이 출세하게 된다면, 누가 성실하게 일하려 할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반칙과 특권을 물리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여전히 그 많은 반칙, 탈세, 특권,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등등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고 국민이 신명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에겐 ‘민중의 친구’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국민을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같은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에는 동참하지 않는 대통령,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에도 ‘아니오’라 말할 수 있는 대통령, 적어도 의식주와 교육․의료만큼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 줄 대통령, 시민사회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귀를 가진 마음이 넓은 대통령, 국민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겸손하고 성실한 대통령. 정말 그런 ‘호민리(護民理)’를 보고 싶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몫만은 아닐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성숙한 국민이 ‘좋은 나라,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대통령보다 더 앞장서야겠죠.

너무나 무모한 꿈인가요? 하지만 이 꿈은 온 국민이 함께 꾸는 꿈입니다. 언젠가 분명 현실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군사독재와 가난의 고통을 뚫고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뤄낸 국민의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은 그 저력으로 호민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권위적인 지도자’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국민에겐 베트남의 ‘호 아저씨’같은 민중의 친구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