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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시골동네 -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11
조회
584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추수가 끝난 앞뜰의 너른 논바닥위로는 아침마다 하얗고 굵은 서리발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한 포기에 500원도 되지 않는 배추가 그마저도 팔리지 못하고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암담한 농촌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한미 FTA 반대 집회가자는 농민단체의 차량방송이 아침부터 울려 퍼진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에는 올해도 힘들 것 같다.

겨울 공부방 준비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흥겨운 음악소리에 이어 마을회관으로 모이라는 이장님의 방송소리. 회의 안건은 올 봄부터 우리 동네로 들어온다며 시끄러웠던 해양수산부의 ‘무선 송수신탑’(위성항법보정시스템) 문제. 1만여평의 부지에 100m나 되는 무선 안테나를 세우는 정부사업이다. 길도 없는 동네 한가운데의 얕은 야산을 지난겨울 아무도 모르게 서울의 땅주인에게 매입하고 길을 팔라며 동네를 들쑤시며 돌아다녀 알게 된 것이 올 2월. 동네회의를 통해 반대를 결의하고 현수막을 걸고 반대서명을 하고 우리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 고생 꽤나 했었다. 예정부지로 통하는 길도 없고 강제수용도 할 수 없는 사업이니 길만 팔지 않고 버티면 못 들어오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잠잠하다가 이번 동네 할아버지 한 분 앞으로 온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제목의 공문에는 강제로 도로부지를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싸워볼 수는 있지만 이기기는 힘들다는 변호사님들의 대답에 긴 한숨만 나온다. 받을 것 좀 많이 받고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들의 의견도 나오고 그것 들어오면 동네 망친다며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분분하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 본다. 원래 산 넘어 옆 동네에 땅을 매입하고 장비들까지 들여왔다가 절대농지인지 몰라 포기했다는 사업.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가 절대농지인지도 모르고 부지를 매입했다? 또 토지도 강제수용 할 수 있는 정부의 공익사업인데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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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해양수산부



대농지라 안 된다? 그 마을 주민대책위원장님도 오셔서 이 사업은 강제수용 안 되는 사업이니 길만 내주지 말라고 하셨다. 1년 만에 무소불위 국가권력의 핵심인 ‘공익사업’이 된 이유는 뭐지?

해양수산부 관계자를 만나 왜 우리 마을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지금 부지는 동네 한가운데고 길도 없고 민가도 너무 가까우니 꼭 세워야 한다면 국유지에 민가도 없는 그런 곳으로 하지 왜 우리 동네여야 하느냐고. 그런데 관계자는 춘천에 꼭 세워야 하며 전파가 어쩌고 하면서 99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춘천에 우리 마을 밖에 없다고 한다. 하하하! 99가지 조건이 맞는 부지가 춘천에 딱 두 군데 있다는 얘기. 그런데 한군데는 비교적 젊은이가 많아 반대가 심하고 한군데는 노인들이라 괜찮다? 부합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 한 가지는 마을주민이었구나!

몇 년 전에 강원도 횡성의 송전탑 문제로 싸웠던 적이 있었다. 울진에서 서울까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송전탑을 세우는데 가까운 직선거리를 두고 온 백두대간을 파헤치며 빙 돌아 송전탑을 건설하는 이유가 비교적 만만한 산골, 시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었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정말 99가지 조건이 맞는 유일한 곳이 우리 동네 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혹시 동네주민의 구성이 대부분 노인이어서 반대가 적을 것이다 라는 등의 이유가 국가사업을 결정하는데 우선 순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가만 두어도 시름에 겨워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농촌이다. 힘없다고 늙었다고 무시하고 괄시하지 마라.
올 겨울은 ‘아이들 공부방’ 투 잡(TWO JOBS)에 ‘송신탑 반대’ 쓰리 잡(THREE JOBS)으로 보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