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자장면이 먹고 싶다. (윤요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4:43
조회
516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팔당댐, 청평댐, 의암댐, 춘천댐 그리고 우리 동네가 나온다. 저희 아랫동네(?)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가 멱 감은 물 드시고 계시니 잘 보여야 깨끗한 물 드실 수 있을 거다.
이곳 춘천시 고탄리를 중심으로 인근 5개리의 시골아이들은 유치원생(4명) 포함 37명. 한반에 5명 안팎의 교육선진국 학급보다도 적은 인원으로 도시 부모님들이 부러워할 선생님과의 일대일 교육을 받고 있다. 전교생 모두가 형제처럼 지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벗삼아 공부하고 뛰놀며 살고 있다. 물론 학원이나 과외는 전혀 없고 이곳까지 태우러도 안오는 관계로 사교육비 지출은 할래야 할 수도 없고, 아이들은 스스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아이들 데리고 이사 오실래요?

지난겨울, 맨 날 집안에서만 노는 아이들을 위해 태권도 학원 한번 보내보는 것이 소원인 학부모님들을 꼬셔서(?) ‘겨울방중 공부방’을 했었다. 동네 들어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나를 믿고 공부방을 위해 회비도 내고 하루씩 돌아가며 아이들도 봐주시고... 태권도 시간은 없었지만 암튼 아이들과 부모님들 모두에게 너무나 행복한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학기가 시작되면서 상설적인 공부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빗발친다. 동네 힘도 모으고 기금도 마련코자 백창우 선생님을 모셔서 콘서트도 근사하게 했다. 우리 아이들 그 큰 콘서트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불렀다. 까만 시골 아이들이 1,000여명 앞에서 주인공으로 당당히 노래를 부를 때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 했었다.

난 ‘차이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비농촌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을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접해 보지도 못한다면 이 역시 차별 아닌가? 귀농하고 나서 농촌의 다른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내 눈에는 아이들이 보였다.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 아이들이 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학원중독증에 사교육비에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과잉교육열풍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데도 여기서는 다른 세상 뉴스를 보는 듯하다.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인데 왜 그럴까? 철저한 자본의 논리다. 여기에다가 농촌인구의 대부분이 노인분들이니 마을의 모든 관심과 일들은 할아버지,할머니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 동네도 나와 귀농한 형님들 포함 4명 빼면 그 위가 바로 환갑을 넘기신 분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또다른 소외와 차별을 당하고 있다.

나도 아이들이 학원의 홍수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개구리 잡고 냇가에 멱감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부모님 일 도와드리는 것도 가끔씩 해야 재미있지, 갈데없고 할 일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해 보시라. 교육환경만 그런가? 문화도 복지도 먹거리도 모두 그렇다. 몸에도 좋지 않지만 피자나 짜장면 한번 배달시켜 먹을 수 없다면, 그 흔한 캠프한번 못 가봤다면 누가 믿을까? 그러니 컴퓨터니 텔레비전이니 꼭 닫아걸고 옛날처럼 한복 입히고 머리 땋아 키워?
얼마 전 운동회가 있었다. 시내에서는 아이들이 많아 한, 두 개 경기면 끝난다고들 하는데 우리아이들은 하나 끝나면 바로 다음 경기가 연이어 있다. 동네 노인분들 경기에 부모님 경기가 두어 개씩 있어도 아이들은 종일 주인공이다. 이 날 하루만큼은 아이들 적은 것이 좋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쓸쓸하다. 37명이 양팔에 양팔을 벌려 서도 운동장의 빈 공간은 채울 수가 없다.

 

가을운동회에서 학생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요즘 60명 이하는 통폐합 한다는 교육부 발표가 있고나서 부모님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복식수업(우리 민재엄마가 초등교사인데 정말 복식은 안 된다고 합니다)에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보다는 시내학교로 통폐합 되는 게 낫다는 의견과 그래도 학교는 있어야 한다는 의견... 저는 후자의견에 한 표! 농촌에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점점 더 어둡고 삭막한 곳으로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단, 시골 작은 학교라도 혹 경제적 논리가 안 맞더라도 적어도 아이들 교육환경 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지금보다 더 개선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살고 농촌도 살 수 있다.

올해 농사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올 겨울 공부방은 또 어떤 재미나는 걸로 채우나 고민해야 될 때가 왔다. 마누라가 농사만으로도 정신없는데 잘 해도 욕먹는 공부방에 왜 매달리냐고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나 도시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때 느낄 당혹감과 소외감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싶다면 이유가 될른지...
여러분! 아이들 데리고 이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