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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공무원과 사장 농부 -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28
조회
396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어느 일요일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면사무소인데요.”
우리 딸내미 유치원 보육료 지원과 관련한 면사무소 공무원의 안내 전화였다. 일요일 날 어쩐 일이냐고 하니 “새로운 업무인데 머리가 나쁘니까 일요일이라도 나와야지요.” 한다. 흐뭇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시골로 내려오고 나서 시골사람들 빼고 가장 절친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농협직원, 면사무소 공무원, 시 기술센타 공무원들이다. 내가 시골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데 공무원들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파트너였다. 모든 행정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은 공무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공무원 한사람이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시골사람들 희비가 엇갈린다. 그러나 공무원들과 일을 하다보면 좋은 소리 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분은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기다리고 점심식사 끝나면 퇴근시간 기다리는 사람들이 공무원이야”라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공무원은 농사꾼의 중요한 파트너

옆 동네 한 젊은 친구가 귀농을 하면서 1년 전 ‘창업농 후계자’라는 것을 신청했다. 젊은 농부 육성이라는 농림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이고 신청자도 많지 않기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신청자 대부분이 선정된다. 그런데 얼마 전 선정 결과를 확인해보니 1년 전에 제출한 서류가 면에서 누락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면에서 시로, 시에서 농림부로 올라가 1년 동안의 서류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이 후계자 서류가 면에서 썩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해보니 담당 공무원이 1년 동안 세 번 바뀌는 과정에서 업무 인수인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 답답한 건 따지고 싸우고 해서 공무원 한사람 징계 받게 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이 동네에서는 공무원들에게 찍혀 생활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거다.

춘천의 환경농업을 하는 농가들이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상대하기조차 싫어하는 공무원이 한명 있다. 농민들이 모이면 이 사람 얘기가 단골로 등장한다. 춘천의 환경농업 일을 맡아 처리하는 직책이기에 환경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누구나 1년에 몇 번 씩은 마주쳐야 하는 공무원이다. 그러나 ‘벽창호’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감인지 줏대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고집으로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아무리 얘기하고 설득하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싸우기도 해보고 좋게 얘기도 해 보지만 여전히 자기 멋대로다. 그 멋대로인 고집이 농민들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야 무슨 문제가 있을까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내가 보기에는 농민과 농촌의 사정은 둘째고 행정의 편리함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여 지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를 잘 모르지만 행정이나 정책이나 그 혜택을 받는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실천되어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과중한 업무 탓인지 기분 좋은 행정 서비스를 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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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 부산일보


 

진정성을 가진 공무원을 기대한다

농촌의 농민들을 공무원이나 농협직원들은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공무원도 노조가 있고 농협 직원들도 노조가 있으니 ‘노동자 공무원, 사장 농부’는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장들이 노동자의 펜 끝에 의해 좌지우지 되니 살기 좋은 세상인가? 어느 한 개인을 비난하자는 것도 노동조합을 비판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사회의 가장 아래쪽에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공무원들이 그 자신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들의 편에 서서 이 사회를 든든히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일뿐이다.

계속되는 경제난 속에서 공무원은 안전한 직업 1순위로 꼽힌다. 공무원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단순히 시간만 때워도 짤리지 않는다는 철밥통 직업의식을 가진 공무원이 아니라 일요일 날 전화 한통 걸어주는 공무원, 시골의 이름도 없는 농부와도 진지하게 토론하는 농림부의 사무관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