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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 이야기 (연규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09
조회
461

연규련/ CJB청주방송 노조 상근활동가




작년 추석은 조합에 들어와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추석상품 판매에 정신이 없다가 연휴 전날인가..경비실과 청소용역 아주머니들 추석선물을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 ‘그래도 명절인데...’ 하는 생각에 열세 개에 한 세트라는 배 다섯 박스를 카트에 싣고 퇴근시간에 늦을까봐 끙끙거리며 콜밴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진 출처 - 이데일리



 ‘콜밴 타고 회사까지 길어야 5분, 30분은 남겠구나.’ 싶었는데 명절 코앞이라 그런지 줄이 길었다. 드디어 내 차례! 배 박스를 트렁크로 옮겨 싣던 기사양반, ‘이게 다 몇 박스야?’하더니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기본요금만 내면 되는 거리라 살짝 미안했지만 내색치 않고 어디까지 가는데요 하니 대뜸 “이 천원엔 못가요”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 그럼 어떻게 간단 말이냐” 반문하는 내게 그 분, “삼천 원은 더 줘야”한단다. 뭬야? ㅂAㅂ;; 따지기 좋아하는 성미가 밀고 올라온다.

어쩔까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지하 2층, 서비스 센터로 카트를 밀고 달려갔다. 사정설명을 하고, 외워두었던 콜밴 번호판을 줄줄 읊으니 담당직원이 여기저기로 전화를 한다. 그러길 몇 번, 하지만 신통한 답을 못 들었는지 “아, 그래요.”만 반복하다 푸들거리며 서 있는 내게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어요. 다음부터 시정할 테니 이번엔 손님이 요금을 부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쌀사서 집에 가져갈 때마다 천 원씩 더 내거든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뚝배기가 끓는 것만 같다. 뿌글뿌글 속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서비스센터 앞에서 두 번째 실랑이가 벌어졌다. “규정대로 하면 원래 요금이 얼마인 거죠?” “이천 원이요” “그런데 왜 나보고 더 내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어느 고객이 불편하지 않겠어요. 애초부터 합리적인 요금을 정하던지, 아니면 명절 같은 특수기간엔 이러이러한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공지판 이라도 세우던지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욧!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지금 나보고 그 돈을 내라는 거예욧!!!”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을 때 고객관리팀장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는...앗!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전 직장에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 가끔 사무실 식구들과 술도 한잔하곤 했던 그 사람이 자기가 잘 말해 볼 테니 같이 가보자며 소매를 잡아끌자 화가 한풀 누그러진다. ‘아 또 이렇게 넘어가는 군,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면 안 되는데 난 역시 너무 물러...’

다시 콜밴들이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가며 회사의 안일한 대응과 관련된 모두의 뻔뻔함에 대해 항의하자 그 역시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니었단다. 쳇, 쳇, 쳇, 개선하지도 않으면서 한 뼘 도움도 안 되는 같은 얘기의 반복...다른 기사와 기본요금에 천원을 더 붙여 움직이기로 흥정을 끝내자마자, 아까의 그 기사가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지나갔다. “새파랗게 젊은 X이...전화를 해대고...이 바쁜 통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하게 만들고...어디서..XX이야” “뭐라구요? 아저씨, 지금 저한테 욕하셨어요?” 전쟁이 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말리는 사람들과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섞이려는 순간, 갑자기 흰색 와이셔츠에 타이를 맨 남자가 등장했다. “무슨 일이야? 손님 앞에서 뭐하는 거야?”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와이셔츠씨 에게로 향했다. 나를 따라왔던 고객관리팀장에게 대충의 상황을 들은 와이셔츠씨는 갑자기 전화를 걸라며 소리쳤다. “당장 전화해서 오늘부터 콜밴 빼!”

‘어? 저 사람 누구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호통 치는 소리에 놀란 몇몇이 와이셔츠 앞에서 무슨 무슨 설명을 하기도 하고, 나와 싸움직전까지 갔던 기사도 그게 아니라며 해명의 제스츄어를 취할 쯤, 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한 채 어리벙벙한 얼굴로 회사로 향하고 있었다. 문을 닫아주던 또 다른 직원한명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점장님이세요. 아까부터 다 지켜보고 계셨나 봐요. 어쨌든 한두 번 있던 일은 아니거든요. 죄송합니다, 손님”이라고 했다. 회사로 가는 차안, 앞자리에 기사는 “밥벌어먹기 정말 어렵네요, 우린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들어와 있는 거라 요금 조정도 마음대로 못해요. 명절 대목 때 아니면 언제 돈 벌어요. 기름 값도 안 나오지”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회사로 돌아와 퇴근 직전인 사람들에게 부랴부랴 선물을 나눠주고는 사무실에 올라가 고객관리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됐어요?” “30분전에 콜밴 다 뺐어요.” “어떡해..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면 어떡해요? ㅠ_ㅠ 내가 원한 게 이런 건 아니잖아요. 사과하고 공지판이나 하나 세우면 되지 누가 다 내쫒으래요. 그리고, 아까 그 사람 정말 점장 맞아요?” “네, 점장님 맞아요.” “그럼, 나 그 사람이랑 연결 좀 해줘요. 내가 직접 얘기할게요.” “우리도 피해가 막심해요. 갑자기 콜밴을 빼는 바람에 발 묶인 고객들 항의도 빗발치고 다른 콜밴 업체들도 아무도 안 들어오려고 하고 있거든요.” 아~!!! 일이 일파만파로 커져버렸다.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참을걸, 그냥 달라는 대로 주고 명절떡값이라 생각할걸’ 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가시방석 같은 명절이 지나갔다.
연휴 내내 전화하고 물어보고, 사정을 해도 난 와이셔츠 씨와 통화할 수 없었다. 후회는 자책과 함께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도 명절인데 하며 과일박스를 챙겨들던 마음은 명절인데 그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가서 벌이를 하나, 한두 명도 아니고 다 같이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났으니 떡값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겠네, 노동조합 간사라면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 하소연을 듣던 친구들이 나대신 와이셔츠를 욕해줬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위로받을수록 움츠러들기만 했다. 그리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반복해서 생각할 뿐이었다.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한순간도 거짓 없이 정의롭기만 했었나?

와이셔츠가 미웠다. 부드럽게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상식적으로만 행동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를 만든 그가 너무 얄미웠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갑자기, 알았다. 사실은 내게도 나보다 더 큰 권력을 이용해 그 기사를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소비자와 개인이라는 이름으로는 통하지 않았겠지만 서비스 센터와 고객관리팀을 통해서 너는 옳지 않다고, 그러니 내게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나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고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라고, 그러니 너는 틀렸고, 나는 맞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부끄러웠다. 정당하다는 방패 뒤에 숨어서 나는 내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차분했었다면, 조금만 더 생각을 하고 말했었다면 고객센터로 달려갈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합의를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여자라서, 어리기 때문에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앞뒤 안 재고 화부터 낸 그때의 내 자신이 보여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들보는 보지도 못하면서 맨 날 사회정의가 어쩌고 하던 자신이 창피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6개월쯤 지난 뒤에 민주노총 산하에 육밴연대라는 콜밴 연합조직이 생겼다는 거다. 사업장엔 운임요금표가 그려진 게시판도 세워졌다. 이 같은 소식은 친절하신 고객관리팀장님께서 전해주셨다. 아마도 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테지. 물론, 그 사건 이후로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이었다. 잊지 못할 기억, 추석 때마다 나는 한동안 괴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