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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부부싸움을 했다 -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4:54
조회
454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 1.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6월 25일 즈음이 되면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목소리 큰 학생들을 선별해 ‘반공웅변대회’를 했던 기억이 있다.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 반공 표어 등등 이북 동포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 시키던 작업(?)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직도 이런류의 웅변대회가 남아있었다.

지난 달 어느 저녁, 밥을 먹다말고 바깥사람은 갑자기 뭔 생각이 났는지 깔깔깔 웃으며 낮에 있었던 얘기를 한다. 바로 ‘자유수호 웅변대회’. 자유총연맹에서 주최하는 웅변대회였는데 이것이 예전의 ‘반공웅변대회’하고 내용이 비슷한 것이었다.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나와서 웅변을 하던 중에 갑자기 장난감 총을 꺼내 좌중을 향해 ‘두두두두’하며 총쏘는 시늉을 하더라는 것이다. 내용은 한국전쟁 얘기를 하며 뭐 그렇고 그런 주장을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그 날 저녁 우리는 부부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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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시스



# 2.
우리 옆 동네 미술(조각)을 하던 나 보다 몇 살 많은 두 부부가 있었는데 작년 00군으로 이사를 갔다. 공교롭게도 그 집 아이와 바깥사람은 학생과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다. 아이는 부모의 재능을 이어 받았는지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고, 학교 대표로 뽑혀 군대회 미술경시대회에 나갔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직접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대회가 아니라 학교에서 그림을 그려 언제까지 군 교육청에 제출하면 된단다. 얼마가 지났을까 바깥사람은 속상해 죽겠다고 푸념을 털어 놓는다. 이유인 즉슨 옆 반 선생님이 제출할 그림을 거의 다 그려준다는 것이었고, 아이는 대상을 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도대회에 나가서는 입상도 못 했다고 한다.

왜? 도대회는 학생이 당일날 대회장에 가서 직접 그리니까-

그 날 저녁 우리는 부부싸움을 했다.
# 3.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의해 저 세상으로 가던 해, 월드컵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2002년.

그 해 4월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 준비로 온통 분주하던 때, 나는 일본으로 세미나를 가게 됐다. 미군기지 환경오염실태 발표자로 추천되어 난생 처음으로 외국을 나가게 된 것이다. 일본으로 가기 전 부랴부랴 결혼식 준비를 끝내놓고 신혼여행 날짜만 잡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바깥사람은 학교에 얘기를 해서 휴가를 내야 한다고 했다. 여행사에 가기로 한 날 바깥사람이 만나자 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진정시키고 들어보니, 교감선생님이 지금은 학기 초라 여러 가지로 바쁘니 나중에 신혼여행을 가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울먹이며 가게 해달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알았다며 돌아서는 바깥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신혼여행간다고 빠지고 또 앞으로는 출산휴가다 뭐다 빠질거 아냐, 아무튼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정말 문제야, 문제”하더란다.

그 날 학교로 찾아가겠다던 나와 안된다는 바깥사람은 예비부부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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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경향신문



# 4.
바깥 사람이 00교대 4학년이던 1999년 어느 날.

며칠 전부터 바깥 사람은 곧 있을 교생실습에 들떠 온통 그 얘기뿐이다.

“무슨 옷을 입을까?” “몇 학년을 맡게 될까?” “아이들이 못 생겼다고 하면 어떡하지?”...

교생실습이 끝나기 전 날. 왠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다가 오늘 학교 선생님들과 회식을 했다며 내일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다음 날 저녁을 먹으며 그 간 있었던 교생실습 얘기로 바깥사람은 내내 쫑알쫑알 거렸다. 설레임과 벅찬 그 첫 마음을 영원히 잃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 되라는 훈계도 해 줬다.

그런데 그 회식이 있던 날, 같이 갔던 친구 몇 명은 울고불고 했단다. 그 학교에 한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 노래방에 가서 교생실습 나온 여학생들과 강제로 브루스를 추고 더듬고, 술을 먹이고...일명 성추행을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선배들 사이에서도 아주 유명한 선생이란다. 내가 조금은 흥분해서 “너도 브루스 쳤어?” 하니, “난 추자고 하는데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어. 괜찮아”한다.

그 날 우리는 예비 부부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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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사람은 절대 이런 저런 학교일들이 문제가 되면 안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는데, 글로 옮기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또한 많은 좋으신 선생님들께도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 곳곳에는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이 있더군요. 나 하나만 잘하면 되겠지 하는 바깥사람에게 다그치기도 합니다. 가끔은 우리 아이를 계속 학교에 보내도 될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부모의 한 사람으로, 선생님을 부인으로 둔 남편으로 훌륭하신 선생님들께 깊이 머리 숙여 부탁드립니다.

저희 부부 싸움 안하게 도와주세요.